김포공항 주변 주민 "소음 배상" 9,600명 집단 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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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기도 부천시 고강본동 고강아파트에 사는 장길례(43·여)씨는 요즘과 같은 무더위에도 창문을 열 수가 없다. 근처 김포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음 때문이다.

방음창을 달았지만 소음이 너무 심해 별 도움이 안됐다. 가끔씩 고막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중3인 아들은 소음을 피해 서울 화곡동 독서실을 오가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張씨와 같이 항공기 소음 공해에 시달려온 김포공항 주변의 주민들이 집단 소송을 냈다.

서울 강서구 신월3·7동,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김포시 고촌면 주민 9천6백명은 30일 국가와 공항관리공단을 상대로 항공기 소음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1인당 2백만원씩 모두 1백92억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9천명이 넘는 인원이 집단소송을 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원고 9천6백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소장만 모두 2천4백여쪽이며, 인지대만도 6천9백여만원에 이른다.

주민들은 소장에서 "소음으로 난청·만성피로·만성불면증 등 신체적 이상과 비행기 추락 등에 대한 만성적 불안감 등 정신적 피해를 겪었다"며 "국가와 공단은 공항 시설관리를 소홀히 했고, 소음발생을 방지할 의무를 위반해 주민들의 주거권·환경권을 침해한 만큼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담당한 최영동(崔榮東·37)변호사는 "정부와 공단의 미흡한 대책으로 주민들의 피해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해 집단소송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에서는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만 배상을 요구했을 뿐 재판 과정에서 입증이 까다로운 재산상의 손해나 치료비용은 빠졌다.

이에 앞서 서울지법은 지난 5월 김포공항 인근지역 주민 1백15명이 국가와 공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계기로 주민들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주관한 원고(原告) 모집에 앞다퉈 참여했다.

주민 설명회를 연 참여연대 박원석(朴元錫·34)시민권리국장은 "주민들이 소송 과정에 대해 꼼꼼하게 질문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주민들이 1인당 3만원씩 모두 2억8천8백만원의 소송비용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원고의 일원으로 소송에 참가한 부천 항공기소음 대책위원회 변종태(邊鐘太·66)위원장은 이날 "손해배상 청구금액이 주민들의 피해를 배상하기에 충분한 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요구에 소홀했던 정부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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