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제2부 薔薇戰爭제5장 終章:염장의 과거를 묻지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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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청해진으로 거짓 투항한 염장에게 장보고는 물어 말하였다.

"그대는 원래 검교경의 신하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경을 배신하고 내게 투항하려 하는가."

이에 염장이 무릎을 꿇어앉은 자세에서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나으리. 신은 원래 검교경의 신하로 경의 명령이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분투하였던 심복 중의 심복이나이다. 하오나 대사 나으리, 경을 도와 도적을 멸하고, 새 임금을 즉위시켜 원수를 갚고, 수치를 씻었사오나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목불인견의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나이다. 바로 도적을 도왔던 배훤백이란 자를 상관으로 임명하였으며, 신은 도적의 심복부하를 직속상관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러한 무도한 일이 어디에 또 있을 수 있을 것입니까. 하늘과 땅이 뒤바뀌고, 강가의 돌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는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하늘 아래 이런 불충한 일은 없을 것이나이다. 따라서 신은 배훤백의 목을 베고 그길로 청해진으로 도망쳐온 것이나이다. 하오니 대사나으리께오서는 소인을 의심치 마시옵고 받아주시옵소서."

장보고는 염장이 들고 온 소금에 절인 배훤백의 수급을 보고서 생각하였다. 염장의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어보였다. 장보고도 배훤백의 목숨을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모든 군사의 핵심부대인 시위부의 군장으로 임명하였다는 김양의 소문을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염장이는 당연히 분노하였을 것이다. 김양을 도와 수많은 전쟁에 참가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하였던 염장보다 도적을 도왔던 배훤백을 어느 날 직속상관으로 임명한다면 장보고 자신이라 할지라도 분노하지 않을 것인가. 따라서 장보고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염장을 맞아들이려 하였다.

이에 대해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염장이 투항하니 장보고는 원래 장사를 사랑하는 터라 아무런 시의(猜疑)도 없이 그를 맞아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장보고의 태도에 책사인 어려계가 간하여 말하였다.

"대사 나으리, 염장은 믿을 수가 없는 반골이나이다. 그자를 받아들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장보고가 묻자 어려계가 대답하였다.

"대사 나으리는 10년 전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염장은 원래 염문이란 자로 해적이었나이다. 대사 나으리께오서 토벌할 때 체포되었던 마지막 해적이었나이다. 따라서 그 얼굴에 도적이란 묵형을 받았던 자로 비록 달군 쇠로 얼굴에 새긴 자문을 지웠다고는 하지만 해적 중의 해적이었고, 도적 중의 도적이었던 짐승만도 못한 자이나이다."

"물론."

장보고는 대답하였다.

"나도 그자의 얼굴을 본 순간 이미 해적이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자는 이미 무주의 도독이었던 김양으로부터 면천 받아 정식으로 군장이 될 수 있었으며, 얼굴에 자문하였던 도적이란 글자도 지웠으니, 이미 더 이상 도적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어찌 한때 있었던 과거 일로 그자를 매도할 수 있을 것이냐. 또한 옛말에 이르기를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하지 않았더냐. 그가 원수의 목을 베어 투항하였는데 어찌 그를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냐. 내가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면 그는 어디에서 목숨을 구할 수가 있단 말이냐."

사기에는 장보고를 '원래 장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염장을 받아들였다고 하였는데, 일찍이 김우징을 비롯하여 김양의 망명을 허락하였던 전례를 봐서도 자신에게 의탁하여 찾아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 장보고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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