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는 醫大교수' 방치할 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해 1월 대한축구협회는 네덜란드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많은 노력 끝에 영입했고, 그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한국 축구를 선진대열로 끌어올렸다. 그는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후 철저히 능력위주로 선수를 선발했고 선수들에게 열정과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프로가 될 것을 강조했다. 23명의 태극전사들은 히딩크라는 훌륭한 스승의 지도를 통해 1년여 만에 완벽한 프로선수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무엇보다 히딩크는 어떤 조직이든 올바른 지도자가 있어야 그 조직이 바로 선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런 히딩크의 교훈이 절실한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의과대학이다. 의대의 위기는 다름 아닌 '지도자의 위기'다. 의대에서 의학을 가르쳐야 할 교수들이 대학을 떠나고 있다.

장래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의학도의 교육과 전공의들의 수련을 책임지는 의대 교수들은 의료계의 히딩크가 돼야 한다. 그런데 의대에서는 교수들이 부족해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당연히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실습도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신설 의대의 경우에는 교수가 적정 인원의 절반에도 못미쳐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험·실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교수를 외래교수로 초빙해 수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상적으로는 몇주 동안 교육받아야 할 내용을 하루종일 강의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 받고 필기시험뿐인 의사고시에 합격한 의사들이 대량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병원 현장의 '교육 시스템'이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있다. 이러다가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진료와 수술 능력을 갖춘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게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일반적으로 의사는 법률가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종이다. 높은 경제적 보상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에게 전문직으로서의 직업윤리와 책임의식을 갖고 대학에 머물러 줄 것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바랄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대 교수들은 과중한 진료 스케줄과 업무, 교육과 연구에 대한 부담에 힘겨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병원 수입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의 획일적인 국내 의료보험 수가체계와 열악한 연구환경으로는 병원이 우수한 교수진을 의대에 머물게 할 수 없으며, 낮은 임금을 받는 전공의들을 '주력부대'로 삼지 않고는 병원경영이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의료계에 필요한 것은 의대 교수들이 히딩크와 같은 지도자가 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의대를 지원하는 일이다. 당국에서는 대학병원에 대한 의료정책을 재검토해 의대생과 전공의들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과 수련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미국처럼 정부가 의사 양성과정에 책임을 지고 병원에 전공의를 지원하는 제도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의대생과 전공의를 육성하는 모든 과정을 개혁해야 한다. 잘못 된 의료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더구나 건강보험은 강제보험으로 국민이 재정을 부담하고 있지 않은가.

히딩크 감독이 신념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으로 월드컵 신화의 주역인 태극전사들을 키우는 데는 역경도 많았다. 의료계에서도 무조건 대학을 떠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과 전문적인 수련과정을 개발해 젊은 의학도를 일류 의사로 양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