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엄마는 경제 선생님>기간 정해 용돈 주고 어디썼나 꼭 적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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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자기가 갑부 딸인 줄 아는 모양이에요."

김미경(52·서울 사당동)씨는 대학 2학년인 딸의 씀씀이 때문에 속이 상한다. 교통비와 식비 조로 하루에 만원꼴로 용돈을 주는데 딸은 번번이 모자란다고 야단이다. 게다가 한달에 10만원도 넘게 나오는 휴대전화 요금도 엄마에게 내달라고 졸랐다. 보다 못해 휴대전화 서비스를 중단시켰더니 집 전화를 멋대로 써 한달에 요금이 수십만원 나왔다.

"잘못 키운 제 잘못이지요.어릴 적부터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해준다'고 했거든요. 아이가 기죽을까봐 집안 형편 살피지 않고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었더니 그만…."

이런 때늦은 후회를 하는 집안이 김씨네만은 아니다. 영어·수학은 물론 피아노·미술·체육까지 조기 교육을 시키면서 정작 자녀가 평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제교육은 제대로 시키지 않는 가정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면 이미 돈에 대한 관념과 소비습관이 상당 부분 형성되기 때문에 나중에 바로잡기 쉽지 않다. 유아기부터 부모가 가정에서 직접 경제교육을 해야 한다."(김정훈 원광대 생활과학대 교수)

전문가들은 집안 경제교육의 기본은 용돈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자녀가 돈의 가치를 알기 시작할 무렵부터 일주일 또는 한달마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주고, 씀씀이를 용돈 기입장에 적도록 하라는 것이다.

"부모가 필요한 것을 다 사주고 용돈은 노는 데만 쓰도록 하지 말라. 자녀가 용돈을 생활비(준비물 등 필수품 구입+취미·오락 비용)로 쓰도록 해야 스스로 생계를 관리하는 책임감을 키울 수 있다."(김정훈 교수)

용돈 교육을 통해 부모가 확실히 심어주어야 할 메시지는 '돈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의 대가로 버는 것'이라는 점이다.

"외국에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대가 없이 돈을 주지 않는다. 심부름이나 집안 일에 값을 매겨 용돈을 준다. 달라는 대로 돈을 주는 한국식 교육은 자녀에게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만 높인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박명희 동국대 가정교육과 교수).

돈버는 것 못지 않게 자녀가 클수록 돈쓰는 것에 대한 교육이 어렵다는 점을 부모들은 실감한다. 24시간 TV·인터넷을 통해 쏟아지는 현란한 광고, 고급 브랜드의 신발과 학용품을 갖춰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믿는 빗나간 또래문화가 청소년의 과소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세 자녀를 둔 조전순(39·서울 상도5동)씨는 아이들이 유명 브랜드나 값 비싼 장난감을 원하면 '공동 부담 원칙'으로 대처한다.

"10만원도 넘는 레고 장난감을 사달라기에 가족회의를 열어 각자 용돈을 모아 3만원씩 내고 모자라는 것을 부모가 채워 사기로 결정했다. 자기 돈을 부담해 샀기 때문에 더 소중히 다룬다."

아이와 함께 물건을 사면서 기회비용(하나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다른 가치)을 가르치는 것도 방법이다. 예컨대 유명 브랜드 운동화와 시장 운동화를 함께 살핀 뒤 유명 브랜드를 사면 친구 앞에서 뻐기는 기쁨을 얻는 대신 시장보다 몇배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라는 것이다.

집안 형편을 자녀에게 솔직히 알려줘 가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재정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곽희수(47·서울 반포본동)씨는 아들의 씀씀이가 커진 고등학생 무렵부터 식탁 옆 벽에 수입·지출표를 붙인 채 매달 남편의 월급을 적고 아들이 돈을 타갈 때마다 지출란에 스스로 액수를 적도록 했다. 그 결과 아들이 쓸데없는 지출을 삼가더라고 곽씨는 귀띔했다.

부모, 특히 엄마가 스스로 합리적·계획적인 소비생활을 함으로써 자녀가 보고 배울 수 있는 모범이 되는 게 가정 교육의 기본이다. 이승신 건국대 교수(소비자주거학)가 2000년 초·중·고교생과 어머니 4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어머니가 가계부를 쓰고 계획적으로 지출·저축하는 경우에 자녀도 용돈 기입장을 쓰고 계획적으로 지출·저축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李교수는 "어머니가 자녀의 경제 선생님이라는 자세로 평소 생활 속에서 본보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양재찬 전문기자, 이재광·신예리·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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