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소프트웨어도 개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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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거문고·가야금 연주자들은 박범훈의'신모듬'(사물놀이와 국악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등 창작 국악곡을 연주할 때 애를 먹는다고 한다. 마이크를 써도 소리가 타악기에 묻혀 버려 좀처럼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악기만 도드라지면 관객은 모든 악기 소리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협주곡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원래 국악은 야외에서 주로 연주됐다. 소음 공해가 전혀 없는 장소에서 대규모 악사가 동원됐다고 하니 그 규모와 흥취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옛 사람들은 도시 소음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들보다 청력이 훨씬 좋아 예민한 국악기 소리를 잡아내는 데 익숙했다 한다.

따라서 현대의 관객들은 국악 감상에서 최대한 만족도를 얻기 위해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야외 공연장을 찾기가 어려우니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조화로운 연주를 듣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어째 양악 시스템에 치우쳐 있다. 공연 현장에서 악기간의 밸런스를 맞춰 주는 오퍼레이터는 양악 기술진들이 국악을 함께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악 전문 기술진이 부족하다보니 세 옥타브 정도가 왔다갔다 하고, 소리 크기의 편차가 심한 대금은 플루트의 음높이·크기·음색에 똑같이 콘솔의 레벨이 맞춰지기도 한다. 가야금의 농현(떠는 음)같이 섬세한 부분은 오퍼레이터가 웬만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잡아내기 힘들다. 다년간의 훈련과 순발력을 갖춘 오퍼레이터들만이 귀로 듣고 약한 음 크기를 순간적으로 보충해줄 수 있다.

28년째 오퍼레이터 일을 해오고 그 중 18년은 국악 위주로 작업을 해온 베테랑인 주석길(51) 국립국악원 무대계장도 "악기 편성·배치, 공연장의 건축적 특성과 곡의 성격에 따라 마이크 설치와 오퍼레이팅 방식이 달라지는데 리허설 한두번으로 모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악 전문 오퍼레이터의 중요성, 인력의 체계적 훈련 시스템은 별로 강조된 적이 없다. 국악 전용 공연장이 하드웨어라면 오퍼레이터는 소프트웨어 중의 하나다. 국악 관계자들은 정교하고 더 좋은 음질의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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