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대 회사돈 동원 2만여회 주가 조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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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내 4대 정유사 중 하나인 에쓰-오일이 주가조작과 회계부정 등을 저지른 혐의가 경찰에 적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 기업이 대규모 회계부정에 휘말린 가운데 터진 사건이어서 경찰이 밝힌 혐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경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가 조작=경찰은 "이 회사의 주가조작은 2000년 3월부터 2년여간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회사 측이 1999년 12월 주당 1만5천5백원대인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회사자금 3천3백90억원을 동원, 38개 증권사 1백9개 지점에 임직원 등의 명의로 2천3백여개의 계좌를 개설한 뒤 자사 주식 1천20만주를 샀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를 주가조작을 앞두고 자사 우호지분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매입 이후 에쓰-오일 측의 우호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회사인 아람코가 갖고 있는 35%를 포함해 85%까지 올라갔다.

이후 회사 자금 1천억원을 동원,14명의 차명계좌를 통해 2만3천여 차례에 걸쳐 주가조작을 했다는 게 경찰 측의 발표 내용이다.

◇분식회계=경찰은 회사 측이 지난 3월 회계처리를 하면서 재고재산 평가기준이 되는 휘발유 등의 판매단가를 조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경상 적자 88억원을 흑자 2백93억원으로, 재고평가 손실 6백32억원을 2백51억원으로 바꿨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이 분식회계에 나선 것은 2000~2001년 회계에서 적자를 기록,외국으로부터 '적색기업'으로 분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증시 반응=금감원 관계자는 "이 회사 내부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지난 3월 검찰과 금감원에 익명의 투서가 들어왔다"며 "그러나 금감원은 익명의 투서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기 때문에 검찰이 경찰을 동원해 집중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증권거래소 등에서 장부를 넘겨받아 수사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D증권의 한 관계자는 "에쓰-오일이 액면분할 과정에서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일은 주가조작이라기보다 주가관리로 보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해명=에쓰-오일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경찰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임직원 차명계좌를 통해 주식을 매입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회사 소유 및 지분구조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취한 장기보유 주주 확보 정책에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주식매수 및 자금대여로 인한 손익은 모두 당사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므로 이들의 계좌와 회사의 차명계좌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계장부 조작 혐의에 대해 "매출 이익을 부풀리기 위해 분식회계를 한 것이 아니라 저평가된 보유재고 자산을 적정하게 평가하는 과정에서 각종 지표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며 "비자금 조성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주안·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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