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드 투 킬'에 '사이코'가 숨어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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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오마주는 선배 영화인에 대한 경의를 뜻한다. 후배는 자기의 작품에 선배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해 앞서간 영화인에 대한 예우를 표시한다. 때문에 오마주는 베끼기나 인용과 차원이 다르다. 진정한 모방의 목적은, 걸작의 영혼을 빨아들여 그 이상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례로 홍콩은 베끼기의 천국이다. 어떤 소재를 만든다는 소문만 돌아도, 바로 어딘가에서 아류작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베끼기일 뿐이다. 그런 베끼기는 결국 영화산업을 말려죽인다.

할리우드의 오마주 전문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의 브라이언 드 팔마다. B급영화와 스릴러 장르에 무한한 애정을 가진 팔마의 오마주 대상 1호는 단연 앨프리드 히치콕이다.'드레스드 투 킬'은 '사이코'의 설정과 장면을 변주한다. 이중인격·복장도착·여성 살해 등이 반복되고 샤워룸의 난자 장면은 엘리베이터로 자리를 옮겨 컷까지 그대로 재현된다.

'바디 더블'에서는 '현기증'과 '이창'을 뒤섞어 놓는다. 폐쇄 공포증의 남자가 망원경으로 건너편 집을 엿보다가 살인현장을 목격한다. 하지만 그가 본 여자는 살아 있었고, 전체가 거대한 음모였다. 팔마는 '현기증'과 '이창'의 설정을 교묘하게 접합시키고, 거기에 특유의 B급영화 스타일까지 얹어놓는다.

'언터처블'에서는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에 나온 계단 학살 장면을 인용하고,'필사의 추적(Blow Out)'에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 Up)'의 플롯과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다. 이처럼 팔마는 선배 감독의 영화를 무수하게 베꼈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필치로 바꾸어놓은 덕에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영화만이 아니라 잡다한 대중문화를 자신의 영화 속에 늘어놓는다.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은 린링둥(東)의 '미스터 갱'과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에서 빌려온 설정과 인물관계를 교묘하게 엮는다.

'펄프 픽션'에서는 디스코의 제왕이었던 존 트래볼타를 기용하여, 과거의 영화와 음악들을 재현하는 레스토랑에서 트위스트를 추게 한다.'재키 브라운'은 1970년대 한창 유행했던 흑인 액션영화(블랙스플로테이션)를 되살리며, 당시의 스타였던 팸 그리어를 부활시켰다.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썼던 '트루 로맨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홍콩영화, 만화 매니어가 등장한다. 이 남자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만화, 음악을 죽 늘어놓고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 남자의 정체성은, 그가 좋아하는 대중문화의 코드로 요약된다.'트루 로맨스'는 약간 과장이지만, 대중문화가 서로를 인용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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