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도 DVD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1면

최근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사진)가 DVD로 출시됐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사랑의 열병과 허망한 기억을 섬세한 소리에 담아 전하는 이 영화는 꽤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막막하게 적셨을 것 같다.

DVD는 이러한 영화의 감성에 더욱 풍부하게 다가서게 한다. 바람에 스치는 대 잎의 소리, 창 밖 너머 후드득 들리는 비 소리 같은 다양한 소리들을 예민하게 담아낸 사운드나 삭제 장면, 다른 버전처럼 DVD의 장점을 십분 살린 다양한 스페셜 피처(특집)들이 스크린에 못다 실은 감정의 결을 다독거려주기 때문이다.

최근 발매되고 있는 한국 영화 타이틀은 이렇듯 여러 모로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작 중심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편수도 상당히 늘었다.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별도의 영상물 등 처음부터 아예 DVD 출시를 염두에 두고 영화 제작을 시작하기도 한다. '무사''8월의 크리스마스' 등 오리지널 네가 필름에서 직접 옮긴 영상을 사용, 큰 불만이던 한국 영화의 화질 문제도 개선되고 있다.

'무사'는 특히 영화와 방대한 서플먼트(부록)를 담은 타이틀과는 별도로, 하드 커버의 해설집을 수록하는 등 타이틀 자체는 물론 고급스런 외양까지 차별화를 시도한다. 틴 케이스로 출시된 '엽기적인 그녀' 한정판도 DVD 이용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엽기녀와 순정남의 사랑 하나로 PC통신에서 스크린·DVD로까지 돌풍을 이어간 데는 영화도 영화지만, 곽재용 감독의 꼼꼼함과 차태현의 유머가 조화를 이룬 음성해설과 방대한 스페셜 피처 등 DVD의 특성을 잘 살린 공도 컸을 것이다.

또 감독들이 DVD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극장에서 미처 못한 이야기들을 푸는 새로운 장으로 적극 활용된다. 음성 해설을 담은 첫 번째 한국 영화 타이틀인 '반칙왕'은 왜 DVD에서 음성 해설이 필요한가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 역시 영화에 쓰인 특수효과 등을 설명하면서 DVD의 유용함을 강변한다(도대체 이 영화 어디에서 특수효과가 쓰였을까 궁금하다면 음성해설을 들어라).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깨끗한 화질과 사운드, 영화를 심화 학습케 하는 유용한 스페셜 피쳐를 바라는 건 DVD를 즐기는 이라면 당연한 욕심이자 특권이 아닐까 싶다. 모은영<영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