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디 아이' 감독 팡 브라더스 내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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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태국의 쌍둥이 형제 감독인 팡 브라더스(37)가 17일 한보따리의 소름을 안고 한국을 방문했다. 올 5~6월 홍콩 극장가를 강타했던 공포영화 '디 아이(The Eye)'가 상영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20일까지) 현장을 찾았다.

'태국의 코언 형제'라는 별명이 붙은 그들은 지난해 개봉됐던 '방콕 데인저러스'로 국내 관객에게도 다소 친숙하다. 고독한 킬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스피디한 화면에 담은 '방콕 데인저러스'는 홍콩 누아르의 맥을 잇는 작품으로 평가됐다. 15분 차이로 태어난 형 옥사이드와 동생 대니는 이 작품으로 토론토 영화제에서 외국 언론상을 수상하며 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주도하는 '젊은 피'로 떠올랐다.

신작 '디 아이'는 동양식 공포가 일렁이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각막 이식 수술로 19년만에 시력을 찾은 소녀 문(안젤리카 리)의 눈에 비치는 여러 유령, 혹은 낯선 그림자를 매개로 삶과 죽음에 얽힌 원혼의 문제를 파고든다. 시간이 갈수록 관객을 옥죄어가는 힘이 수준급이다. 팡 형제는 "호러영화는 처음입니다. 둘이 함께 많은 공포물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모았죠. 12년 전 홍콩의 소녀가 각막 수술을 받은 후 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7일 후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실화를 모태로 했습니다"고 말했다.

'첨밀밀'의 홍콩 감독 천커신(陳可辛)이 제작을 맡은 '디 아이'는 가급적 대사를 줄이고 백색·청색톤의 서늘한 화면으로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또 시력을 회복한 장님 소녀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 볼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란 통념을 깨려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은 운명을 바꾸길 바라죠. 그러나 좋은 결말을 맺긴 어렵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정도 숙명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장님이 눈을 뜨고 싶어한다거나, 농아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고 말했다. '디 아이'의 마지막에서 세상의 비밀을 깨닫고 다시 시력을 잃으면서도 행복을 되찾는 문의 캐릭터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팡 형제가 한국에 온 것은 4년 전 부산영화제 참석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그들은 "부천에 와 보니 한국이 홍콩보다 훨씬 영화에 열광적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디 아이'는 다음달 15일 일반 개봉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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