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의자에서 책 읽지 마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방송이 책읽기 캠페인을 벌인다고 했을 때 난센스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우선 TV부터 꺼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TV는 잠재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서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책들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그 현상의 부작용 또한 적지 않지만, 대중들에게 텍스트의 존재를 새삼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책읽기 프로그램의 업적은 평가받아야 한다.

대표적인 국내 책읽기 프로그램 KBS1-TV 'TV 책을 말하다'가 18일로 50회를 맞는다. 2001년 5월 3일 『로마인 이야기』로 첫 회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1백권 넘게 소개했다.

경쟁사의 비슷한 프로그램이 개그맨들을 내세운 오락성으로 눈길 끌기에 성공했다면, 이 프로그램은 진지한 시각으로 책을 파고든다.

18일 밤 10시 방송하는 50회 특집은 MC 박명진(서울대 언론정보학과)교수가 현지에서 진행하는 '프랑스 책읽기의 왕, 베르나르 피보를 만나다'(사진)로 꾸민다.

피보는 '따옴표를 여세요'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프랑스 공영방송 F2의 책 프로그램인 '아포스트로프'(1975~90)와 '문화의 온상'(1991~2001) 등 책읽기 프로그램을 28년간 만들어 온 사회자 겸 프로듀서다. 그의 프로그램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밀란 쿤데라·베르나르 베르베르·이자벨 아자니·알랭 들롱 등이 출연했고 그때마다 피보의 거침없는 언변과 날카로운 지적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문화의 온상'의 마지막 녹화방송이 있던 지난해 3월 프랑스 지식인 2천여명이 모여 이 프로그램의 종방을 아쉬워하고 피보의 공로를 기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피보는 TV가 책을 단순하고 피상적으로 소개한다는 비난에 대해 "구름 속에 묻혀 은둔하는 지식인들의 오만"이라고 잘라 말한 뒤 "일반 대중들에게 학문과 지식을 소유하는 행복을 나눠주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자신이 작가도 지식인도 아닌 문학을 선택한 저널리스트로서, 시청자들이 작가에게 감히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대신 해주었다는 것이 인기 비결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들려주는 좋은 책읽기 비법은 어떤 것일까. ▶책을 읽을 때 종이와 펜을 준비한다▶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 밑줄을 치고 X표시를 한다▶X가 하나면 중요하고 세 개면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좋은 의자에 앉아 똑바른 자세로 읽어야 한다 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침대는 절대 안되며 푹신하고 멋을 낸 의자도 금물이라는 점이다.

정형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