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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유해진, 마음을 훔치는 겁나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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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출연한 장면을 훔쳐가는 배우, 잠깐 나오지만 뛰어난 연기로 관객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배우 말이다. 이미 ‘명품조연’ ‘국민조연’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유해진(40)에게 걸맞은 표현 아닐까. 용의자로 잡혀와서 자기 손을 뒤집어놓은 채 현란한 칼놀림을 보여주던 ‘공공의 적’ 용만을, 칠득과 팔복을 거느리고 천연덕스럽게 광대놀음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줬던 ‘왕의 남자’ 육갑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의 동네 양아치역 이후 그는 줄곧 우리 사회 변두리에 있을 법한 보통 사람을, 입에 착착 감기는 대사를 통해 스크린 속에 곧추세웠다. 사람뿐 아니라 개 역할도 잘했다. 지난해 ‘전우치’의 초랭이는 애니메이션 ‘슈렉’의 수다쟁이 당나귀 동키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았다.

신 스틸러 유해진은 14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스릴러 ‘이끼’에서 다시 한번 장면을 훔친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과 스미골이 보여줬던 자아분열을 연상케 하는 4분여의 명장면. 유해진은 피부의 털이 한 올 한 올 곤두서는 듯한 그 장면으로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든 연기를 넘어선다. 유해진은 조연이지만 자신이 나오는 장면에선 그 순간만큼은 주연이다. 그는 관객의 눈길을 훔친다. 아니,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

유해진이 ‘이끼’에서 연기한 덕천은 마을 이장 천용덕(정재영)의 왼팔 격이다. 순박하지만 지능이 다소 모자란 듯한 청년. 이장이 시키는 일이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듯 충성한다.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구석을 캐고 다니는 해국(박해일)에게 심리적 압박을 느끼던 그는 끝내 폭발하고 만다. 이장의 지시를 다시 주워섬기는 이 장면은 ‘이끼’에 내장된 다이너마이트다. “(…) 가서 장부에 도장 찍어오니라. 도장 안 내놓으면 지장이라도 박아오니라. 지장 안 박아주면 손가락이라도 잘라오니라. 손가락 안 내놓으면 멱이라도 따오니라. 멱 안 내놓으면 조상 묘라도 쓸어오니라. 가서 불이라도 질러뿌라.”

8일 그를 만났다.

-‘이끼’를 본 사람들이 독백 장면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긴 독백은 처음이었다. 대본으로 세 쪽 분량이었다. 촬영 시작 전부터 이 장면은 강우석 감독님에게나 내게나 굉장한 부담이었다. 덕천이라는 인물을 한순간에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장과의 사연, 현재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농축돼 있다. 그전까진 그냥 시골 어디에나 있는 순박한 청년, 이 정도인데 이 장면 다음부터는 인상이 확 바뀐다.”

-연습하러 촬영 도중 제주도로 갔다던데.

“친한 형이 살아 가끔 간다. 텅 빈 목장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2주일을 연습했다. 흰 운동화가 시꺼멓게 될 정도로 걸었다. 이런 중요한 장면은 대사가 한 번 엉키면 계속 실수를 한다. 그래서 일단 내 입에 대사를 붙여야 한다. 넓디넓은 벌판에서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감정을 찾아낸다. 소리도 지르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하는 순간이 온다.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숱한 연습 끝에 그나마 완성본이 나온다.”

-집에선 연습을 못 하겠다.

“격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그렇다. KBS 드라마 ‘토지’에 출연할 땐 일산에 살고 있었는데 근처 논두렁에서 연습했다. 파주 근처에도 애용하는 둑방이 있다. 하루 종일 쏘다녀도 사람이 거의 안 온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멀리서 사람이 온다 싶으면 잠깐 딴짓하는 척하면 된다(웃음).”

-이 장면은 끝나자마자 스태프들이 박수를 쳤다던데.

“기뻤다. 어질어질 현기증도 났고. 연극무대에서 감정을 있는 대로 몰입해서 연기한 뒤 커튼콜 할 때의 그런 느낌? 사실 이런 장면 아무리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음 못 하는데, 감독님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유해진 하면 애드리브(즉흥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상만(김상호)이 떨어져 죽기 직전 이장과 산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뭘 처먹은겨” 하는 대사도 애드리브 아니었나.

“맞다. 흔히 애드리브는 레디 고! 하면 즉석에서 바로 나오는 거라고들 오해한다. 난 그런 걸 싫어한다.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 애드리브도 공부가, 고민이 필요하다. 가령 그 장면에선 두려움이 섞인 애드리브가 필요하다. 연습할 때 그런 걸 다 고민하는 거다.”

-대본엔 없는, 그러면서 그 인물에 필요한 대사는 어떻게 찾아내나.

“대사든 애드리브든 이렇게 하면 튀겠지, 노리면 절대 안 된다. 아무리 웃기는 아이템이 생각나더라도 앞뒤 정황을 따져서 해야 한다. 사실 조연은 출연 분량이 적고 디테일하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빈 공간을 배우가 스스로 채워야 한다.”

그가 이날 가장 빈번히 얘기한 단어는 ‘고민’이었다. “배우는 끼만으론 어려운 직업이다.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비중으로 보자면 1대 9쯤? 연극하던 시절 느낀 건데 감정만 너무 쏟아붓다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열정만 있어도 안 되고 미리 계획을 조금씩 세우는 냉정도 필요하다.”

‘야생성’이란 단어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는 야생성이 남아 있어야 한다. 라이브한 걸 찾는 작업이 연기다. 연기하다 보면 인이 박힌다. 그걸 부수려고 늘 애를 쓴다. 관객이 ‘저 장면에선 이렇게 하겠지?’라고 예상하는 수준보다 하나 더 높은 걸 보여줘서 ‘허, 저렇게 표현한단 말이야?’라는 반응이 나오게 해야 하니까.”

문득 그가 오래전 현대무용을 배우기도 했단 사실이 떠올랐다. 그것도 고민의, 노력의 일환이었을까. “연기에 도움이 됐다기보단 그런 열정이 밑거름이 됐다. 뭐든지 내 걸로 만들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만 해도 ‘영화배우=꽃미남’이라는 인식이 절대적이었다. 친구들이 만날 네가 무슨 배우냐고 놀렸다. 그때마다 오기가 났다. 하나씩 배워서 내 걸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때의 열정이 지금도 그립다. 그때 그 뜨거웠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안주하려 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는 산을 벗한다. 마침 집 근처에 북한산이 있다. “집에서 늘어져 있다가 자, 이제 좀 날 들볶아볼까 하는 심정으로 집을 나선다. 아주 높이 오르는 건 아니지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는 된다.”

그는 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선 다소, 아니 상당히 겸연쩍어 했다.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게 싫고 어색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있으면 내 안에 간직하고 싶다. 어쩔 땐 인터뷰 때 막 떠들고 나서 ‘어휴, 이 주둥이를 확 그냥!’할 때가 있다(웃음).” 그래서 다른 어떤 수식어보다 그냥 ‘배우 유해진’으로 불러줬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저게 무슨 배우야?라든가 예전엔 배우였는데 요즘은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 두렵다. 그저 배우라는 타이틀이 안 어울리진 않는 배우가 되는 것, 그랬으면 좋겠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시콜콜] 유해진

“연기가 쉬우면 사는 게 재미있겠니?” 힘들 때 떠오르는 스승의 말이랍니다

1970년 충북 청주 출신이다. 대학을 두 번 낙방하고 고향에서 의상학과에 진학했다. 95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편입했다. 97년 목화레퍼토리컴퍼니에 입단해 연출가 오태석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 목화는 ‘배우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배출한 재목들이 많다. 황정민·김수로·성지루·박희순·임원희 등 충무로 실력파들이 이곳에서 양육됐다. 오태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해진이 영화계로 ‘시집’간 것도 이 때다.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에 덤프트럭 기사 역할로 데뷔했다.

극단 목화는 유해진 연기 인생의 모태다. “항상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생활했다. 자기가 쓸 의상과 소품은 손수 만들어야 했다.” 그는 “그때의 치열했던 기억이 지금까지 내 안에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는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자신의 연기를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는 오태석의 가르침과 함께. 그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은사는 지금은 은퇴한 서울예대 송혜숙 교수다. 송 교수에 대해 회상하는 그의 눈빛은 거의 어머니를 추억하는 그것에 가깝다.

“요즘도 자주 봬요. 대학 시절 즉흥연기 시간이었는데, 저한테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를 해 보라고 시키셨죠. ‘너한테도 그런 애틋한 마음이 있을 거야’라고 하시면서요. 아무도 몰랐던, 저도 몰랐던 제 안의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 주셨죠. 지치고 힘들 땐 선생님을 찾아가요. ‘연기하는 내내 연기가 쉬우면 사는 게 재미있겠니?’라는 말씀은 지금까지도 위안이 돼요.”

강우석 감독을 비롯해 이준익·최동훈 등 같이 일했던 감독들에 대해 그는 “작품에 관한 대화를 너무나 재미있게 나눴던 분들”이라고 얘기한다. “배우와 의견 교환하는 데 늘 흔쾌한, 열려 있는 분들이죠. 항상 명쾌하고요.” 도약의 발판이 됐던 ‘무사’의 김성수 감독도 각별하다. “제 눈빛이 강렬하다고 분장할 때 눈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입에서 맴돌던 질문을 던졌다. 유해진의 ‘그녀’에 대해서. 올 초 열애설이 확인된 이후로 쭉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그런 질문은 불편해서요.” 이날 같이했던 두어 시간 중 유일하게 불편했던 순간이었다.

기선민 기자


출연작

<영화>

2010년 이끼

2009년 전우치

2008년 트럭/강철중: 공공의 적 1-1

2007년 권순분여사납치사건/이장과 군수

2006년 타짜/국경의 남쪽

2005년 왕의 남자/혈의 누/공공의 적2

2004년 달마야 서울가자

2002년 해안선/광복절 특사/라이터를 켜라/공공의 적

2001년 무사/신라의 달밤

1999년 주유소습격사건

1997년 블랙잭

<드라마>

2004∼2005년 토지(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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