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약 健保 적용 대폭 축소 "누구위한 보험인가"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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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 내시경 검사로 위궤양이 낫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치료제를 쓸 수 있다니 말이 됩니까."

말기 위암환자인 崔모(55)씨는 6개월 전 말기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포기한 채 위궤양 치료제 등을 복용해오다 이달부터 약값을 본인이 다 부담하고 있다. 이 약이 건보가 되려면 내시경 검사로 아직 궤양이 낫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고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그는 "내가 또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고개를 떨구었다.

보건복지부가 이달부터 소화기관용 약의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축소하는 고시를 시행하면서 부담이 크게 증가하자 환자들이 "누구를 위한 건강보험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도 16일 밤 국민건강수호 투쟁위원회를 열어 정부가 문제의 규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9월 중 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가장 반발이 큰 조항은 만성 설사나 변비환자, 항생제 사용에 따른 위장 이상 증상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만 정장제를 쓸 때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내용. 이에 따르면 배탈이 나 외래환자로 병원을 찾으면 지사제와 유산균 제제 등을 본인이 전액 부담하고 먹어야 한다.

경기도 분당신도시 주부 韓모(36)씨는 "여섯살 된 아이의 장이 약해 심하게 설사를 하면 밤에 병원을 찾을 때도 있는데 건강보험이 안된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류머티즘 환자에게 소염진통제(디페인 등)와 함께 위궤양 치료제(잔탁 등)를 먹여도 마찬가지다. 관절염 약을 장기 복용하면 위장질환이 생겨 예방차원에서 잔탁 등을 먹을 경우가 있는데 정해진 약(싸이토텍 등) 외에는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정부 고시는 건보재정을 절감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엉터리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고시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하 중앙진료심사위원회(의사가 대부분 위원임)가 재심의한 결과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고시 중 정장제의 일종인 지사제에 대해서만 건보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소화제 9백여개를 건보대상에서 제외한 뒤 건보가 되는 비슷한 효능을 가진 소화기관용 약으로 처방이 급속히 바뀌자 이달부터 소화기관용 약의 건보인정 범위를 축소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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