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가 웃을 노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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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6월 한국팀이 월드컵 4강에 진입했을 때 우리 국민은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는 애교있는 구호를 내걸며 그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낸 바 있다. 많은 국민은 연고의 타파, 과학적인 훈련, 철저한 경쟁, 충분한 보상을 강조하는 히딩크식 지도력이 세계 4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며 그를 강제로 귀화시켜서라도 더 오래 한국팀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본질 벗어난 총리 자질론

한국 축구팀이 만들어낸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이 기적의 발단이 지난 수천년 동안 외국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우리가 세계를 향해 마음의 빗장을 푼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신토불이'의 토종의식에 집착해 계속 빗장을 잠근 채 국내 차원에서 한국팀의 실력향상을 도모했더라면 결코 월드컵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없었음이 명백하다.

그런데 의식의 세계화를 이룬 6월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상(張裳)총리서리의 임명 문제가 대두되자 한국 사회는 불과 열흘 만에 신토불이의 전근대 사회로 다시 후퇴하고 있는 느낌이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호기있게 세계 최고의 감독을 영입하고, 세계 최고의 축구강국들과 대등한 게임을 벌여 '밀리지 않는다''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던 우리가 난데없이 총리서리 자녀의 국적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정수행이 마비되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가 웃을 노릇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張총리서리 자녀의 국적에 관련된 많은 논란은 본질을 크게 벗어났다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張총리서리의 경우 자녀가 군복무 회피나 원정출산 등과 같은 고의성이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네 살 때, 그것도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미국 국적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사안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 둘째,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자녀를 주민등록에 포함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했다는 비판도 지나치다. 건강보험의 경우 외국인도 보험료를 납부할 경우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 건강보험은 모든 거주자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서비스다. 이렇게 볼 때 張총리서리에 대한 비판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 총리서리로 임명된 사람의 국정수행 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張총리서리가 국내외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난관을 헤쳐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치 미국 국적을 가진 아들이 국정수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야단을 치고 있을 뿐이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축구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면 한국 사회의 문제 제기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먼저 총리서리가 충분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인지, 어떤 경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질문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의 고의성과 사유를 묻고, 그것이 국정수행에 중대한 장애가 되는지 등을 물어야 한다.

정략적 논쟁 이젠 거두자

그러나 7·11 개각 이후 지난 5일 동안 우리는 한국사회의 질문 제기 방식이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여실히 관찰할 수 있었다. 야당, 언론, 시민사회 그 누구도 적절한 질문을, 적절한 순서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누구도 문제의 경중을 따져 제대로 질문하지도 않았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작은 문제를 증폭시켜 정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한국 정치의 관행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진정으로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초빙하자는 식의 담대한 발상을 해야만 국적문제에 대한 폐쇄성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국제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테네인을 고집했던 아테네와 달리 로마에 거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로마인이 될 수 있도록 한 개방적 국적제도가 작은 로마를 큰 로마로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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