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대주주 등록 전후'치고 빠지기' 감독당국 솜방망이 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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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코스닥기업 대주주들이 관련 법규를 어겨가며 차명계좌를 이용해 자사 주식을 파는 등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으나 감독당국의 대응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관련 사실을 적절한 시기에 공개하고 처벌 규정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자화폐 개발업체 이코인의 최대주주 김모씨는 지난해 11월 22일 등록 직후 주가 급등을 틈타 차명으로 갖고 있던 주식 10만1천3백52주를 장내에서 처분했다. 이는 사실상 대주주가 등록 이후 2년간 보유 지분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예수' 규정을 어긴 것이다. 또 김씨는 지난해 5월 코스닥위원회에 등록 예비심사를 청구한 뒤 같은 해 6~7월 차명계좌에 있던 27만8천6백48주를 팔았다. 등록 이후 대주주의 지분이 보호예수되기 때문에 매각이 힘들 것으로 보고 미리 처분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6~7월은 코스닥위원회가 이코인에 대해 코스닥 등록에 대한 심사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현재 코스닥 기업 등록규정에 따르면 심사를 청구한 이후 최대주주 지분이 변경되면 등록심사를 통과할 수 없다.

코스닥위원회는 지난 5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이 사실을 통보받은 뒤 차명계좌 처분 주식을 다시 사 보호예수하라는 시정명령만 내렸다. 코스닥시장 투자자에게는 이 사실을 아예 알리지도 않았다. 개인투자자들은 대주주의 불법행위를 전혀 알지 모른 채 그동안 이코인 주식을 매매해온 것이다. 지난 12일 이코인은 대주주 지분 매각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한편 하이콤정보통신 최대주주 김모씨와 이 회사 김모 감사도 남의 이름을 빌려 주식을 보유했으나 이를 신고하지 않고 회사를 코스닥시장에 등록했던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특히 김 감사는 지난해 등록 후 37만여주를 장내에서 팔았다. 이 회사 역시 보호 예수 명령만을 받았다. 이에 대해 코스닥위원회 정의동 위원장은 "대주주의 위장지분 매각은 회사 실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이 아니다"며 "만약 등록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의 피해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실적으로 차명계좌 보유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스닥위원회 측의 이런 해명이 궁색하다고 지적한다. 이코인과 하이콤정보통신의 경우 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지분이 변동되면 공시를 하도록 돼 있는 증권거래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또 현행 유가증권협회 등록 규정에는 등록과 관련된 서류에 '중요한 사항'이 허위로 기재됐거나 누락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아예 등록 취소까지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숨겨둔 지분을 거래해 차익을 챙길 경우 탈세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코스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회계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적발된 시스컴에 대해서도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등록 취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감독당국이 '투자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불법행위를 눈감고 넘어간다면 투자자들의 추가 피해가 잇따를 것"이라며 "감독당국이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 은닉행위를 방조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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