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의 번뇌 잊는 주말 禪수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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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6일 오전 3시, 전남 해남군 두륜산에 안겨 있는 대둔사(주지 보선스님) 경내. 앞을 분간 못할 정도의 어둠에 잠겨 있다.

모든 생명을 어둠과 잠에서 일깨우기 위해 스님이 도량을 돌며 두드리는 목탁 소리에 잠을 깬 주말 열린수련회 참가자들의 눈엔 밤새 계곡 물소리 때문에,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상념을 끊지 못해 잠을 설친 탓에 핏발이 서 있다.

그러나 30분쯤 후 예불을 드리러 법당에 들어서는 몸과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지며 출가의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 밀려온다.

스님이 법고를 두드리고 범종을 치는 현장을 지켜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반야심경』을 봉독할 때 참가자들은 탐욕과 어리석음이 빠져나감을 느낀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스님이 『천수경』을 외는 약 15분 동안 수련회 참석자들은 1백8배를 올리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낮춘다.

'절이란 무명(無明)을 굴복시키고 진성(眞性)을 공경하는 것'이라던 서산대사의 가르침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오전 4시30분. 사위는 여전히 어둡다.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 낯설어 그런지, 아니면 자신의 내면을 열심히 들여다보느라 그런지 대화가 없다. 참가자들의 표정을 보건대 모두가 자신과의 대화에 빠진 듯하다. 산책을 절에서는 경행(經行)이라고도 부른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온갖 미물이 내는 소리에 귀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대자연과 하나되면서 나와 나 아닌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가르침의 참뜻을 깨치게 된다.

오전 7시30분 차담(談)시간. 원래 청운당 뒤 은행나무 아래에 마련한 '야외카페'에서 참가자들과 스님이 굵은 나무등걸 의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 날은 비가 내려 장소를 청운당 안으로 옮겼다.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을 거느리고 있는 명성에 걸맞게 대둔사 경내엔 차나무가 많다.

차를 끓이는 법인(수련원장)스님과 한북 스님의 입담이 아주 구수하다. "차맛은 혼자 마시면 신령스럽고, 둘이면 아취가 있고, 서넛이면 멋있고, 대여섯이 마시면 덤덤하고, 일여덟명이 되면 그냥 음료수 맛이라고 해요. 그러니 오늘 차맛이 좋지 않다면 여러분 때문입니다." "맛이란 것도 불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으로부터 특정 차가 맛없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봐요. 그러면 그때까지 그 차를 맛있게 먹었던 사람도 그 다음부터는 그 차의 맛을 달리 느끼게 됩니다. 그렇듯 모든 게 생각에 달린 겁니다."

법인 스님은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교유 등을 통해 아름다운 만남과 욕심을 버리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지난 5일부터 2박3일간 21명이 참가한 대둔사 열린수련회에는 이 외에도 좌선·등산·사경·자유정진 등 프로그램이 많았다. 『반야심경』을 몇자 적고 절을 한번 하든지, 아니면 그냥 경전을 베끼든지 제약을 많이 두지 않은 사경 프로그램의 경우 한참 옮겨 적다보면 '이렇게 뜻도 모르고 베끼기만 해도 되는 걸까'라는 회의를 품게 되고, 그 회의는 공부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둔사의 열린수련회는 규율이 엄격하지 않아 수행보다 휴식에 더 가깝고, 매달 두 차례 연중 열린다는 점에서 각 사찰의 여름 수련회와는 구별된다. 각박한 생활에 찌든 도시인들의 쉼터 기능을 사찰이 맡고 나선 셈이다. 수련생이 지킬 규칙은 가능한 한 침묵하고, 단순하고 느리게 움직이며, 세속 일을 화제로 올리지 않고,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정도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둔사에는 마음이 열린 스님이 많아 좋다. 특히 법인 스님과 한북 스님은 참가자들을 친구대하듯 한다. 이들이 주축이 돼 운영하고 있는 이 절의 인터넷 사이트(www.daedunsa.org)에는 지난주 참가자 대부분이 감상문을 올려놓고 있다.

연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택헌(32)씨는 "바루공양을 하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을 호흡하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도 전국 각 사찰에서는 7~8월 2개월 동안 산사수련회를 통해 3만여명에게 선(禪)등 출가의 세계를 보여준다. www.pogyo.org에 상세한 참가 정보가 실려 있다.

해남=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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