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Leisure] 철원 탐조 여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후두둑 -' 고요했던 저수지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바람에 댓잎 맞비벼대는 것 같은 소리가 사위에 그득하다. 작지만 격한 날갯짓이 어슴푸레한 여명을 갈가리 찢는다. 하늘은 이미 새떼들로 뒤덮였다. 바다를 떠난 태양이 동쪽 산등성이를 넘어오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하겠지만, 먹거리를 찾아 보금자리를 떠나는 기러기들의 부지런한 비상은 벌써 시작됐다.

저 먼 시베리아에서부터 수천㎞를 날아온 새들에게도 중력을 극복하는 것은 매번 힘겨운 과제다. 피곤한 육신을 잡아끄는 수렁 같은 땅과 물을 떠나지 않고서는 먹잇감이 널린 저 건너 들판으로 갈 수 없다. 하여 안락함을 떨치고 철원평야의 차가운 바람에 몸을 싣는 새들의 비상은 종족보존의 숙명으로써 당당하다.

계절의 변화와 하루 해가 뜨고 지는 일과만이 DNA에 각인된 새들에게 달력은 무의미하다. 오늘 뜨는 해와 내일 뜨는 해는 그냥 해로써 동일하다. 그저 보금자리와 들판을 오가는 무심하고도 묵묵한 날갯짓만으로 새들은 신산한 겨울을 버텨낸다. 하지만 이윽고 새 봄이 오면 단조로운 일상이 뼈마디와 근육에 붙여준 힘으로 다시 먼 길을 찾아 떠날 것이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새들의 비상은 본능에 충실한 몸짓이지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수천㎞ 대장정을 이뤄낼 수 있는 원동력인 셈이다. 그 위대한 일상 앞에서 철원평야의 허리에 걸쳐진 인간의 철책은 초라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저수지를 떠난 기러기 편대의 등 뒤로 해가 떠올랐다. 며칠 남지 않은 갑신년 해다. 새들의 힘찬 비상이 마음속 권태를 걷어가듯 찬연한 햇살이 뼛골에 스미는 철원평야의 냉기를 서서히 걷어낸다. 몸이 훈훈해지며 마음도 따뜻해진다. 이젠 며칠 뒤에 떠오를 을유년의 새 해도 당당히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철원=최현철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cogito@joongang.co.kr>

*** 철원의 또 다른 매력 3

◆ 희귀 새들의 향연

철원 지역은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와 재두루미(203호).독수리(243호)들의 겨울 안식처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두루미들은 비무장지대에 둥지를 틀고 겨울을 난다. 날갯짓마저 고고한 두루미며 회색 연미복을 입은 귀족 같은 재두루미의 모습이 논바닥이나 머리 위에서 수십마리씩 목격된다. 본래 한강 유역에서 습생 생물을 먹으며 겨울을 났지만 습지가 줄면서 얼마 전부터 낙곡이 많은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철원평야에 떨어지는 낟알이 한해 1600t이나 된다니 1000마리 가까운 두루미가 모여들 만하겠다.

날개를 펴면 3m가 넘는 우람한 독수리들도 흔하다. 죽은 고기만 먹는 독수리들이 검은 날개를 펴고 유유히 활강하는 모습은 죽음의 위엄을 갖췄다.

하지만 독수리의 식성은 사냥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란다. 그래서 작은 새들이 주변에서 아무리 괴롭혀도 공격하지 못한다. 실제로 토교저수지 앞에서는 덩치만 커다란 독수리들이 까치나 까마귀에게 머리를 쪼이며 어기적거리는 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이 오고 먹잇감이 줄면 가장 먼저 빈사 상태에 빠지는 새도 독수리다. 철원군은 이들을 유치하고 보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죽은 소나 돼지를 토교저수지 제방에 던져놓는다.

◆ 한탄강 트레킹

철원군 한가운데를 가르는 한탄강은 원조 래프팅 지역이다. 동강과 내린천이 뜨기 훨씬 이전부터 래프팅 붐을 일으킨 곳이 한탄강이다. 래프팅이 여름 레포츠라면 겨울엔 한탄강 트레킹이 별미다.

철원이 춥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지난 주말에도 수도권과 10도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추위가 며칠 계속되면 계곡물은 꽝꽝 얼고 잘 녹지도 않는다. 강 트레킹이라는 희한한 레포츠가 탄생한 배경이다. 한탄강은 바닥과 벽이 직각을 이루는 협곡 지형이다. 강이 굽이 돌며 만들어낸 지형은 강 가운데서 느껴야 다 볼 수 있다. 제 몸 가누느라 정신이 없는 여름 래프팅에서 맛볼 수 없는 재미를 겨울 한탄강이 끼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트레킹 시작 지점인 직탕폭포(左)와 한가운데 고석정, 마침 자리 순담계곡이다. 폭 80m에 높이 3m의 직탕폭포는 국내 폭포 중 가장 폭이 넓다. 겨울엔 낙수가 반쯤 얼어 장관을 연출한다. 임꺽정이 숨어들었다는 전설이 서린 고석정은 철원 제1경이다. 유달리 자태가 고운 소나무 몇 그루를 머리에 이고 강 한가운데서 20m나 솟아오른 고석암이 강변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눈으로만 보고 흘리기 아까울 지경이다. 하여 옛사람은 코 앞에 정자를 지었고 요즘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꺼낸다. 함부로 들어가면 위험하다. 현지인이나 군청에 꼭 확인할 것.

◆ 분단의 현장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4년에 낸 3집 앨범 '발해를 꿈꾸며'의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철원 노동당사를 택했다. 냉전의 잔설이 여전하던 시기에 젊은 세대의 문화 아이콘이 외친 통일과 평화의 목소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치열한 전투의 흔적을 온몸으로 안고 선 2층 건물의 흉측한 뼈대는 이때부터 안보와 반공교육의 산실에서 통일과 화합을 꿈꾸는 장소로 극적인 변신을 했다. KBS도 열린음악회를 들고 이곳을 찾았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일까? 1990년대 말 노동당사 아래쪽 도피안사보다 남쪽에 있던 군부대의 검문소가 노동당사 바로 뒤로 물러났다. 이제 이곳은 번거로운 신분확인 절차 없이도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 손바닥만한 규모지만 국보와 보물을 두 개나 품고 있는 도피안사도 그 덕을 함께 봤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02년엔 이 절에 금빛 개구리가 출현해 장안에 화제가 됐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이곳의 분위기는 삼엄하다.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많이 눈에 띄고 검문소가 길마다 차단하고 있는 살풍경에서 분단의 아픔이 저며온다. 검문소 너머에는 한국전쟁의 가장 격렬한 전투지였던 백마고지와 남침용 제2땅굴, 폭격 맞은 기차 잔해가 선명한 월정리역 등이 안보관광 코스로 자리하고 있다.

*** 여행정보

의정부에서 43번 국도를 타고 40분쯤 달리면 신철원(갈말)이 나온다. 고석정과 직탕폭포.도피안사 등 경승지는 그보다 북쪽인 구철원쪽에 있다. 모두 10㎞가 안 되는 거리. 철원군은 지난해부터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탐조관광(11월~2월)을 시작했다. 고석정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민통선 안쪽 토교저수지.아이스크림고지.월정리역 전망대 등을 도는 1시간30분 코스. 중간중간에 내려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오전 7시.10시, 오후 1시와 3시 등 하루 네 번 출발한다. 출발 10분 전까지 고석정 철의삼각전적지 관리사무소(033-450-5558)에 신청하면 된다. 어른 5000원. 도피안사와 노동당사까지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그 너머 안보관광지에 들어가려면 역시 관리사무소에 신청해야 한다. 자기 차량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인솔 차량의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 네번만 들어갈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