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 죽어도 길 내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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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사이 가도난(戰死 假道難·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줄 수는 없다)'.

김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씨에 대한 불구속 선처 압력을 거절하면서 청와대 측과 갈등을 빚었던 송정호 법무장관이 11일 이임식에서 인용한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의 말이다.

宋장관은 이 말로 청와대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수사의 정도를 지킨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없음을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후 법무부 강당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법무 일몽(一夢)을 깨고 나서'라는 제목의 이임사를 통해 "1백60여일의 짧았던 재임기간이었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물러난다"며 "수즉다욕(壽卽多辱)이란 말이 있듯이 어려운 때일수록 오래 살면 욕되는 일이 많은데 지금 물러나는 것이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문제가 된 검찰 고위 간부들의 수사기밀 누설과 관련,"사건의 당사자를 포함해 검찰의 수사에 누구도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宋장관은 또 검찰조직에는 "부정부패가 만연되면서 집권자가 주동이 되는 거악(巨惡)이 생겨났으며,권력자나 그 주변을 관리하고 처벌하는 일은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과 같은 존재인 검찰이 해야 한다"며 "손때 묻은 손으로는 국가 정의를 세울 수 없으니 검사들이 먼저 도덕적으로 청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宋장관 교체에 대해 검사들은 검찰 조직이 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홍업씨 선처압력이 공개돼 파문이 일자 그 책임을 물은 것 같다"면서 "권력의 입맛에 따라 검찰 조직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강수·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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