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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권력화, 절차 잘못 운영한 사람들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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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금융회사에 대한 서비스를 강조해 왔다. 금융회사 위에 군림하지 않고, 감독과 검사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변신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금융회사 임원은 “예전에 비해 금감원의 고압적인 태도는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권력기관’이란 인식은 여전하다. 이 임원은 “신한금융지주 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힘이 있어야만 금감원의 감시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인식이 더 확고해진 셈”이라고 말했다. 선진화되기는커녕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에서 일했던 한 금융계 인사는 “금감원이 일을 처리하는 절차는 예전보다 훨씬 투명해졌다”며 “그런데도 금감원에 대한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은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독과 검사의 절차는 명확히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면서 정치권력 등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가 하면, 감독기관 스스로가 점점 더 권력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문제의 대부분은 절차가 아니라 절차를 운영하는 사람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금감원 수뇌부에 시위를 당겼다.

금감원 자체보다는 정치권력이 더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교수(법학)는 “금감원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금감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금융감독을 이용하려는 정치권력이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계 인사나 심지어 일상적인 제재 조치에도 정치권력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내면서 감독당국이 소신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적어도 감독과 검사 등 금융당국의 고유한 권한에 한해서는 완벽한 독립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며 “법으로 힘들다면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감독당국의 독립성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에 대한 제재와 인사,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조사 등에 대해서도 법적 절차 이전에 정무적 판단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 등으로 분산된 금융 정책·감독 기능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숭실대 장범식(경제학) 교수는 "현재의 정책·감독 체제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급조된 측면이 있다”며 “당장이라도 보다 나은 체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어 “미국은 금융개혁법을 통해 감독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금융개혁 흐름에 맞춰 우리도 금융 정책·감독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메가뱅크 등에 대한 논의도 감독당국의 개혁과 맞물려 있다는 게 장 교수의 판단이다. 메가뱅크에 걸맞은 감독의 선진화가 이뤄졌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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