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농업보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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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나라 농업보조금 정책이 농업이 가야 할 방향과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 논농업직불보조금은 지난해의 두배로 늘었지만 친환경·경영이양직불 보조금은 크게 줄었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 이후 우리 농업의 살 길이 친환경·고품질 및 규모화라고 강조하면서도 이와 관련된 보조금은 오히려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농업인 느는데 보조금은 축소=올해 정부는 4천77억원의 논농업직불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지난해(2천1백67억원)에 비해 거의 두배로 늘어난 금액이다.

논농업직불보조금은 소득 하락을 보전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논농사를 짓는 농가 대부분에 주게 돼 있어 친환경·고품질 농업이나 영농 규모화 등 정부 정책 방향대로 유도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올해 지급될 친환경 보조금 예산(30억원)은 지난해(57억원)보다 47%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친환경농업 품질인증 농가는 수요가 늘면서 19 99년 1만3천7백64곳에서 지난해 2만7천4백60곳으로 증가했다.

친환경 농업인이 늘어나는데 친환경농업 보조금이 줄어드는 이유는 이 인증을 받은 농가들조차 논농업직불제 보조금을 신청하기 때문이다.

친환경보조금은 농약·비료 사용량을 까다롭게 검사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에 비해 ha당 52만4천원밖에 안돼 논농업 직불제보조금(ha당 50만원)과 큰 차이가 없다.

충남에서 유기농법으로 쌀농사는 짓는 金모(51)씨는 "농민 입장에선 보조금 액수 차이도 없는데 받기 편한 논농업직불보조금을 놔두고 친환경농업 보조금을 신청할 이유가 없다"며 "우리 농업을 고품질·친환경 쪽으로 유도해야 하는데 정부 지원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경영이양보조금 5년 전의 6%=경영이양직불 보조금도 97년 2백73억원에서 올해는 16억원으로 대폭 축소됐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경영이양 보조금을 계속 줄여오다 지난해엔 논농업직불제 시행을 이유로 예산을 더 삭감했다.

정부의 예산 감축도 문제지만 노령농가 입장에서도 정부가 노후생계를 보장해주지 않는 이상 ha당 2백81만원밖에 안되는 경영이양보조금을 받고 농지를 넘기기가 어렵다. 그 금액은 한해 쌀 농사 소득에도 훨씬 못미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UR대책으로 추진해오던 쌀농사 규모화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ha이상 대규모로 쌀농사를 짓는 농가는 97년 3만5천가구였으나 지난해엔 3만2천가구로 오히려 줄었다.

농림부 관계자는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친환경·경영이양 보조금의 단가를 높이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 직접보조금 OECD 최하 수준=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지난달 18일 경제헙력개발기구( OECD)가 한국의 농업보조금이 회원국 중 최고수준이라는 요지의 '2002년 농업보고서'를 내자 "사실 왜곡"이라며 반박했다.

한농연은 "우리나라 농업보조금은 올해 4천억원밖에 안되는 논농업직불보조금이 고작일 정도로 열악하다"며 "전체 국민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농업보호수준(PSE)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7%로 OECD회원국 중 가장 높다.

하지만 이중 일반인들이 보조금으로 알고 있는 정부의 직접지불 비중은 7%에 불과,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이를 절대금액으로 따지면 미국의 4%, 일본의 4분의 1 수준밖에 안된다.

쌀 농업 직접지불보조금의 경우 미국은 쌀농가에 2000년 ha당 87만원을 줬지만 우리나라는 올해 겨우 50만원으로 올랐을 뿐이다.

이런데도 우리나라의 농업보호수준이 높다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이 비싼 값에 농산물을 사줌으로써 정부 대신 농업인들에게 보조를 해준 셈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연구위원은 "세계무역기구(WTO)농업협상이 진행되면서 농산물값을 높게 유지하는 정책은 어렵게 됐다"며 "선진국처럼 소비자 부담비율을 줄이고 정부 직접보조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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