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경쟁력 강화 정치권부터 공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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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계 미디어 지도가 달라진다. 일본 소니는 최근 파산한 독일 키르히 그룹을 인수하러 나섰고, 독일 베텔스만 그룹은 아시아 미디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또 호주의 대표적인 미디어 그룹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은 MGM 인수 등 미국 미디어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어 주목된다.

스웨덴의 보니에와 스위스의 노이에 취르히 차이퉁 미디어 그룹도 세계적인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다. 비영어권임을 감안하면 이들의 약진은 또 다른 의미를 던진다. 다른 선진국 미디어 업계와 정책 관계자들 또한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 자국의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미디어 업계는 현정권을 지지하는 그룹과 비판하는 그룹으로 갈라져 있을 뿐 아니라 진보와 보수, 큰 신문과 작은 신문 등으로 편가르기를 한 상황에서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또 미디어 정책 관계자들은 자신의 업무 영역이나 권한 확대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듯하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통신서비스 및 사업자 분류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디지털 방송사업자를 기간통신 사업자로 지정해 정통부 관할에 두는 데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을 준다.

정통부의 이같은 발표에 방송위원회는 '방송통신법제 정비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들이 방송통신의 통합 규제기구 역할을 할 방도를 찾는 중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KBS1·KBS2·EBS·아리랑TV 등은 방송통신법제 정비 작업에서 제외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임명한 방송위원회 위원들이라 이런 선택이 불가피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방송사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작 우리의 미디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과다하게 지분을 갖고 있는 지상파 방송 채널의 민영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시대 착오적인 미디어 관련 법규들과 위헌 소지가 있는 조항들을 손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다. 정권의 말기에 이른 만큼 정략을 떠나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어떠한가. 아직 '불법 파업'이 진행 중이고, 정치권은 오직 대선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 자리를 두고는 제1당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가 경쟁력을 위한 연구 및 정책 개발에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지난 지방선거 때 KBS2와 MBC의 민영화 등 미디어 관련 정책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선거가 끝났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추진할지 청사진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닌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국회의원들이 대선 후보를 둘러싼 새로운 전략 수립에만 급급할 뿐 나라의 미래를 위한 정책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민주당은 지금쯤 현정부 대선 공약의 미디어 관련 부분 중 무엇이 실현됐고,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평가·정리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미디어 시장을 둘러싸고 무한 경쟁에 돌입해 있다. 신문·방송·영상·통신을 넘나드는 신매체와 멀티미디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먼저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연구하고, 세미나 및 포럼도 개최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국회에 정치권·언론계·학계 등이 참여하는 '한국 미디어 경쟁력 강화위원회'를 만들어 정책 방향을 설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 미디어산업의 미래를 위해 정치권은 정쟁을 지양하고, 대신 미디어 정책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솔선수범하길 기대해 본다.

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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