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11명 힘 합쳐 성폭행 피해자에게 ‘패키지 도움’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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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2일 부산시 중구의 한 신경정신과 전문병원. 대학병원 2곳을 거쳐 이 병원에 입원한 조모(15)양은 6개월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그는 2월 초 오후 9시쯤 경남 김해의 한 아파트에서 10대 5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감금돼 폭행까지 겹치자 견디지 못하고 6층에서 뛰어내렸다. 다발성 늑골 골절과 골반 골절 등으로 13주 진단을 받고 부산대병원과 동아대병원을 거쳐 최근 이 병원으로 왔다. 하지만 조양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많은 치료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성폭행 사건이 잇따르고 있으나 가해자 처벌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몸과 정신이 망가진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치료와 피해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산지검은 지난해 9월 ‘성폭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전문가회의’(전문가 회의)를 만들어 성폭행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형사3부 정옥자 검사가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다 필요성을 느껴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3명의 피해자를 지원했다.

이 모임은 검사, 부산 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햇살’ 사무국장, 신경정신과 전문의, 변호사, 교수, 성폭력상담소장, 시청 담당 공무원 등 각계 전문가 11명이 수시로 회의를 열고 지원 방법을 찾는다.

조양은 4월 초까지는 추락 때 입은 골절만 치료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4월 14일 열린 전문가회의에서 김상엽(50)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신경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부산 여성·아동센터가 있어 성폭행 후유증 치료가 가능한 동아대병원으로 옮기도록 안내했다. 동아대병원에서는 조양의 불안감을 줄이고 정신적 충격을 치료하는 데 집중했다. 전문가회의는 민사소송을 하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현재 성폭행 피해자에게는 여성가족부가 성폭력상담소를 통해 1명당 300만원의 재활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범죄피해자구조법은 범죄로 장애를 입을 경우 최대 3000만원의 장애구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성폭행 피해자들은 장애진단을 받기 어려워 혜택은 남의 일이다.

부산지검 정옥자 검사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정신적인 후유증까지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전문가회의는 작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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