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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떨어진 별 - 국내] 시대를 빛냈던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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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통과 죽음은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격언처럼 살아 있는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세상을 휘어잡았던 권력가도, 노벨상에 빛나는 학자도, 은막의 전설이라 불리던 스타도 자기 몫의 시간이 다하는 날, 어김없이 세상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올 한해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 문화·예술계

'꽃'의 시인 김춘수, 가수 박경애씨

문화.예술계의 큰 별들이 많이 떨어졌다. 5월에는 구상(85) 시인이 별세했다. 구상 시인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 문제를 탐구하며 영적인 작품 세계를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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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가장 애송하는 시'인 '꽃'을 남긴 김춘수(82) 시인은 11월 작고했다. 그는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비롯해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 등 25권의 시집을 남겼고, 예술원상.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조시인 김상옥(84) 선생은 10월 60여년을 해로한 부인이 별세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그 뒤를 따라갔다. 그는 '조춘' '백자부' 등 명작을 남기며 한국 시조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8월에 작고한 국악인 임윤수(87) 선생은 충청권 국악계의 거목이었다. 남도잡가의 명창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여성국극인 박옥진(69)씨는 9월 별세했다.

5월에는 80평생을 어린이 문학에 바친 아동문학가 어효선(79) 선생이 별세했다. 1956년 윤석중 선생 등과 함께 어린이 문학단체인 '새싹회'를, 59년엔 '한국 글짓기회'를 만들었다. '꽃밭에서'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과꽃' 등 주옥같은 노랫말을 남겼다.

대중 문화계의 손실도 컸다. 작곡가 황문평(84)씨가 3월에 작고했다. 그는 '빨간 마후라'를 비롯, 영화.드라마 주제가, 뮤지컬 곡 등 900여곡을 작곡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소박한 서민 연기를 보여주던 탤런트 김순철(67)씨가 2월 별세했고, 60~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누빈 악역 스타 독고성(75)씨는 4월에 작고했다. '곡예사의 첫사랑'으로 인기를 끌었던 가수 박경애(50)씨는 7월에,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를 부른 대형가수 박경희(53)씨는 8월에 별세했다.

*** 학계

한글 수호의 상징 허웅.한갑수씨

한국 근대교육의 발전에 기여해온 원일한(87) 연세대 이사가 1월 별세했다. 그는 연세대.YMCA 등을 설립한 언더우드가(家)의 3세로 연세대 재단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대표적 한글학자 두 사람도 세상을 떠났다. 1월 작고한 허웅(86)씨는 34년간 한글학회 회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한글 수호의 상징이었다. 주시경.최현배 선생을 잇는 국어학자로 꼽혔다.

한글학자 한갑수(91) 선생도 11월 별세했다. 그는 KBS 라디오 '바른말 고운말' 코너에 30년 넘게 출연했으며, 한글재단 이사장과 한글기계화연구소 이사장으로 한글 현대화와 보급에 앞장섰다.

동양사학자 고병익(80) 전 서울대 총장도 5월에 작고했다. 광복 후 1세대 중국사 연구의 대표주자였던 그는 연세대.동국대.서울대 교수를 지냈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방송위원장.문화재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1998~2002년 한국은행 총재를 맡아 외환위기 수습에 앞장섰던 경제학자 전철환(65)씨는 6월에 별세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경제발전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로 유명했다.

6월에 별세한 이기백(80) 교수는 원로 역사학자였다. 역사학회.진단학회 대표를 맡아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식민사관 극복에 앞장섰다. 2월에 작고한 김진균(67) 교수는 한국 민중학술운동의 대부였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시절 80년대 신군부에 의해 해직된 뒤 '상도연구실' '산업사회학회' 등을 주도했으며, 학술.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 정·재계

이민우 전 총재, 김동조 장관 같은 날에

1980년대 군사 정권시절 제1야당인 신민당을 이끌었던 이민우(89) 전 총재가 지난 9일 별세했다. 그는 6선의 야당 거목이었으며, 87년 신민당 총재 시절엔 내각제 수용을 담은 '이민우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3월에 작고한 신도환(82)씨는 3공 시절 야당인 신민당의 최고위원으로 자신의 계보를 이끌었던 5선 의원이었다. 대한체육회 부회장.고문과 대한유도회장도 역임했다.

이민우 전 총재와 같은 날 작고한 김동조(86) 전 외무장관은 박정희 정권에서 대미.대일 외교를 주도한 한국 외교사의 산 증인이었다. 60년대 한.일 수교협상의 실무 주역이었고, 초대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8월에 별세한 장예준(80) 장관은 박정희 정권에서 건설부.상공부.동력자원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산업화에 크게 기여한 사람 중 하나다. 건설부 장관 시절엔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 수립에 기여했다.

재계에서는 3월에 대한전선의 설원량(62) 회장이 별세했다. 그는 40여년을 전선.알루미늄 등 국가 기간산업 육성에 힘쓴 기업인이었다. 9월 작고한 대신증권 양회문(53) 회장은 양재봉 창업주의 아들로 75년 공채 1기로 입사해 외환위기 등 격랑 속에서도 대신증권을 국내 정상급 증권사로 일궈냈다.

파라다이스그룹 창업자 전락원(77) 회장은 11월 작고했다. 그는 89년 파라다이스그룹 안에 케냐 총영사관을 개설하는 등 아프리카 지역 민간외교 활동도 펼쳤다.

이용택 기자

*** 종교계

불교 해외포교 선구자 숭산 스님도 …

11월 입적한 숭산(77)스님은 한국 불교 해외포교의 선구자로 이름이 높았다. 세계 32개국 120여 곳에 국제선원을 개설한 공로로 미국.유럽 등지에서 더 이름이 높았다. 10여년 전부터 서구에선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등과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 가운데 한 명으로 숭앙받았다. 현각.무량 스님 등 60여명의 뛰어난 외국인 제자를 길러냈다.

도심포교의 개척자였던 석주(95)스님은 11월 입적했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포교원장, 동국역경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불교계의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서강대 설립을 주도하고 국내 노동.인권 운동에 크게 기여한 바실 프라이스 신부는 9월 선종했다. 2002년 세상을 뜬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와 함께 서강대 설립을 이끌었으며, 1966년 국내 첫 노동문제 전문연구소인 '산업문제연구소'를 설립했고, 70년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를 설립한 뒤 20년간 간사를 맡았다.

◆ 기타

최규하 전 대통령의 부인인 홍기(88) 여사가 7월에 별세했다. 그는 청와대 시절 불우이웃돕기 운동에 앞장섰고, 최 전 대통령이 총리일 때도 살림을 직접 하는 등 소박하고 서민적인 풍모로 유명했다.

농촌운동가 겸 수필가인 류달영(93)씨는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30년대 '상록수'의 주인공인 최용신과 함께 농촌운동을 벌였으며, 광복 후에는 식량자족운동.무궁화 보급운동 등을 전개했다.

출판인 한만년(79)씨도 4월에 작고했다. 그는 '일조각'을 창립해 대표적인 한국학 전문 출판사로 키웠으며, 대한출판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출판계의 기둥 역할을 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대표적 재가(在家) 지도자였던 서돈각(84)씨가 8월 별세했다. 그는 상법(商法)학자로 동국대.경북대 총장을 지냈으며, 학술원 회장과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설대위(미국명 데이비드 존 실.80) 전주 예수병원 원장은 36년간 헌신적 봉사 활동을 펼친 미국인 의료 선교사였다. 전쟁 고아와 버림받은 노약자, 가난한 암환자의 아버지였던 그는 11월에 별세했다.

한국인 프로골퍼 1호인 연덕춘(88)씨도 5월 별세했다. 35년에 프로자격을 얻었고, 국제대회 첫 출전과 국내대회 첫 우승 기록을 보유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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