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감 목말랐던 일본인 진심으로 한국 축구 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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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번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사상 처음 함께 맞이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례적인 공동개최, 염원했던 첫 승리와 예선 돌파, 상상을 초월한 한국팀의 4강 진출…. 일본팀이 끝까지 함께 가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아시아 축구의 힘을 세계에 보여준 한국팀을 칭찬하고 싶다.

한국인들은 최근 일본인들이 한국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떤 한국 사람들은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모습)'가 다른 일본인이 진심으로 한국을 응원할까'하는 의심을 할지 모르겠다.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내가 보기엔, 열광적인 팬들은 진심으로 한국을 응원하고 있다. 내 주변에도 빨갛게 물든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본 뒤 그 기쁨을 함께 맛보고 싶다며 주말에 한국에 가겠다는 노부부가 있다. 한 직장 동료는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휴가를 얻어 서울로 날아갔다.

일본인들은 그동안 뭉칠 수 있는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역할 모델을 상실한 시대에, 축구에 열광하는 팬들을 보며 '구심점 갈망증'이란 말을 떠올렸다.

희박한 인간 관계에 익숙했던 일본 젊은이들이 월드컵 기간만큼은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과 서로 악수하고, 안고, 외치면서 기쁨을 나누는 일체감을 공유했다.

히노마루(국기)·기미가요(국가)에 관심이 없던 그들이 "닛폰"을 외치며 일본인임을 재확인했다.

그런 일본인들이 일본팀이 패한 후, 다음 구심점을 한국팀에서 찾았다. 그들이 '혼네'로 한국을 응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최근 일본 TV에선 축구와 한국관련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오전 시간 프로그램들도 한국을 조명하는 내용으로 꾸며지니, 이젠 일본 주부들도 즉석 축구통·한국통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보통의 일본인들이 한국을 접하는 기회가 많아진 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은 그 관심이 곧바로 한·일관계 개선에 연결될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에게 처음 주어진 이 기회를 잘 살려 상대에 대한 진정한 관심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월드컵이 막 내린 뒤 한·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활약하는 제 2막이 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월드컵을 맞아 일본에 불고 있는 한국 열풍에 대해 일본 NHK 방송 보도국 프로듀서 기무라 요이치로(木村洋一郞·31)가 본지에 한글로 기고문을 보내왔다. 기무라는 1997년 연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일 교류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한 바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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