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로 끝난 여성 정치참여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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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2년이 여성정치참여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을 기대하며 야심차게 밀고나간 여러 계획들이 무색하리 만큼 지방선거 결과는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망스럽기만 하다. 여성권한지수 최하위권 탈피는 여전히 요원한 일이 돼 버렸다.

여협은 지난해 9월 사회 각계 지도자로 2002여성정치지도위원회를 구성해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여성에게 불리한 정치관계법의 개정을 국회에 청원했으며, 전국 릴레이 여성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나 선거 결과 여성 당선자는 기초단체장이 2명(0.9%), 광역의원이 63명(9.2%), 기초의원이 77명(2.2%)에 불과하다. 부산지역에 두명의 여성구청장이 탄생하고, 광역의회 비례대표의원과 기초의원이 과거보다 조금 늘었다는 점이 위안이 될 수 없다. 유엔 권고수준인 30%는 물론 세계 평균 여성의원 비율 13.8%에도 크게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한 인권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균형발전을 위해 여성의 대표성 제고는 필수조건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를 위해 할당제를 채택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정치관계법 개정시에 지역구 30% 여성공천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국내 정당들은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특히 전격 도입된 후보 경선제는 정당 내 상향식 공천을 정착시켜 참여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당초 의도와는 별개로 돈·인맥·조직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여성후보자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여성후보자들은 본게임에 나설 기회조차 얻기 어려워졌다.

각 정당이 광역의회 비례대표에 여성을 60% 이상 공천함으로써 이번 선거에서 광역의회 여성 당선자수를 늘리는데 크게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례의석이 고작해야 전체 의석의 약 10% 수준인 73석에 지나지 않은 현실에서 이것만으로 여성참여 확대를 기대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유독 우리나라 정치권은 여성참여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할당제 또한 대단한 시혜처럼 여겨 인색하기 이를 데 없다. 여성이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폄하하고 동반자적인 참여를 수용하지 못하는 풍토라면 수백, 수천년이 걸리더라도 여성들이 자신의 힘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비감마저 든다.

그러나 가장 낙후된 분야로 첫손 꼽히는 정치분야에서 새로운 희망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 각종 데이터들은 기득권에서 밀려나 있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덜 부패하고,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개혁에 앞장서며, 수평적 사고로 평등주의에 입각한 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화가 정치계에 뿌리내리려면 여성들을 정계로 이끌어 내는 할당제가 적어도 10년간 유지돼야만 한다.

여러 어려움을 뚫고 이번 지방선거에 당당히 입성한 두 기초단체장을 포함한 지방의회 여성 당선자에게 마음 깊이 격려를 보낸다. 많은 지자체 가운데 여성이 다스리는 곳이 모범적인 지역으로 평가받아 국민에게 여성참여가 정치개혁의 첩경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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