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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화를 도서관으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4호 35면

만화는 무한한 내용을 저렴하게 담을 수 있는 순발력 있는 매체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핵심을 살린 압축적 표현이 강점이다.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는 인터넷, 특히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표현방식이다. 예능 프로에 쓰이는 자막도 실은 만화적 기법이며 광고나 영화의 콘티도 만화를 자주 사용한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의 책상엔 만화가 잔뜩 쌓여있는데, 주요 히트작들에는 만화의 스토리와 아이디어가 곳곳에 담겨 있다. 공부의 신베토벤 바이러스는 아예 만화를 드라마로 각색한 경우다. 만화는 다매체 시대의 선봉장이랄 수 있다.

잘 만든 만화는 ‘대중과의 소통’은 물론 학교와 기업현장의 교육에도 효과적이다. 충실한 조사가 뒷받침된 만화는 어설픈 논문보다 낫거니와, 생각의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치열한 현실을 우아한 단어로 포장한 교과서는 허영심을 달랠 뿐이며, 홍보자료에 가까운 사례는 학습자의 눈을 가린다. 만화에 담긴 다양한 세상의 모습은 요란한 취업 관련 행사들보다 진로 탐색에 유용하다.

그러나 만화의 현실은 뜻있는 작가와 독자들을 분노하게 한다. 청와대 자료실에서 만화를 구입한 것을 두고 ‘문제가 있다’는 식의 지적이 있었다. 또 모 기관장이 판공비로 만화를 선물했다는 비난도, 대학교 도서관에서 만화가 인기라는 질책성 보도도 있었다. 시집은 고상해서 좋고 만화는 나쁘다니…. 문화 콘텐트 강국을 내건 나라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만화 원작의 드라마는 한류라고 칭송한다. 허영과 무지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만화책을 잘 들고 다니는데,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한심하다’는 투가 묻어 있다.

만화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낙후된 제작과 유통 환경의 원흉이다. 독자층이 좁고 그나마 불법 스캔복제 때문에 제대로 사서 보는 사람이 적으니 사업성이 떨어진다. 출판사로선 외국 만화를 번역해서 파는 쪽이 쉽지만 그나마도 밑천이 짧아 조금씩 찍어낸다. 절판되기 일쑤다. 단행본 시장을 석권한 일본 만화의 내용을 두고 지적이 많지만 ‘우리 것’을 내놓지 못하는 반성부터 해보자. 시장성이 작으면 아무래도 취재의 깊이도 떨어지기 쉽고 좋은 작가도 나오기 어려워지며, 독자가 더 한정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만화 속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저작권 풍토도 문제다. 이런 여건에서도 좋은 작품을 만든 작가정신이 대단하지만 ‘투혼’만으로 버틸 수는 없다. 일본 만화의 다양한 콘텐트는 만화 출판사의 매출이 2조원에 이르고 히트작은 단행본으로 수십만 부를 찍는 시장 여건에서 나온다.

음반·영화·게임에 다 있는 ‘진흥법’이 만화에만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세상에 중요한 일이 만화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요란하게 조직과 예산만 늘린다고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 쉬운 방법부터 찾아보자. 부천시는 만화영상진흥원을 통해 제작 지원을 하고 자료보존 및 전시, 사업화 지원을 하고 있다. 좋은 시도지만 성과는 전국적 시장 규모가 있어야 나올 수 있다. 우선 주요 도서관에 만화를 비치하면 어떨까. ‘가려 뽑은 좋은 만화’부터 시작해 보자.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온라인 공유도 하면 더욱 좋겠다. 사업성이 생기고 저작권에 대한 배려도 쉬워진다. 정보와 지식의 총아로 거듭나는 도서관의 변화에도 부합한다. 마음을 열고 외국 만화도 배척하지 않고 비치하면 금상첨화겠다.

신문·방송도 좀 더 적극적으로 만화를 다뤄 보면 어떨까. 최근 포털들의 만화 서비스나 몇몇 신문의 사례도 있듯이 독자의 바람은 뚜렷하다. 과거 신문 소설이나 TV만화의 영광을 생각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다. 스마트폰 열풍도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 만화의 잠재력이 인정받고, 만화를 통한 수익이 창출되면 전문 인력들은 모여들게 마련이다. 훌륭한 기획, 제작이 가능해진다. 돈과 인재가 모여들면 만화는 세계 속, 우리의 성장동력이 된다. 만화가 문화 콘텐트 강국, 경제강국의 주역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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