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Focus] ‘대회 마지막 파4 홀 원온(one on) 시도’ 약속 지킨 김대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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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22·하이트). 그에게는 한국 최고의 ‘장타자’란 수식어가 붙는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한국남자프로골프투어(KGT)의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 랭킹 1위(293.6야드)다. 장타뿐 아니다. 상금랭킹(3억7142만원)도, 평균 타수(69.77타)도, 평균 퍼팅 수(1.671개)도 1위다. 그야말로 올 시즌 제일 잘나가는 선수다. 처음 보는 사람도 그의 대포알 같은 300야드 장타에 입을 쩍 벌리고 만다. 단순히 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샷의 폭발성과 승부사 기질, 그리고 팬 서비스까지…. 날로 그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열린 CT&T·J골프 주최 제53회 KPGA선수권대회 우승자 축하 갈라 파티에서 그를 만났다.

“마지막 날 팬들을 위해 18번 홀(파4·375야드, 약간 내리막 홀이어서 실제 거리는 360야드 정도)에서 드라이버로 한 번에 그린을 노리겠다.”

지난 4일 경기도 용인의 아시아나CC 동코스에서 끝난 KPGA 선수권대회 폐막을 이틀 앞두고 김대현은 이렇게 약속했다.

‘원온 시도를 하겠다’는 얘기였다. 갤러리들은 반신반의했다. 설령 그 거리만큼 칠 수 있다고 해도 이 홀의 페어웨이는 좁고, 그린 앞에는 긴 연못이 입을 벌리고 있다. 우승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한번의 실수로 수천만원을 날릴 수도 있다. 이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차지한 손준업(23)은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아이언 티샷을 했다.

김대현은 정말로 드라이버를 잡았다. 한번에 그린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공은 약 320야드 지점에 떨어졌다. 그린 주변에서 ‘와~’ 하는 탄성과 박수가 터졌다. 3위에 그쳤어도 김대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1m82㎝, 72㎏의 훤칠한 체격이라지만 그런 파괴적 본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공격적 도전이 즐거운가.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세미프로)가 공격적으로 가르쳤다. 펑펑 내치게 했다. 그래서 무조건 필드에 나가게 되면 잘라 치거나 장애물을 피해 가는 법이 없다. 오로지 앞만 보고 친다. 장타를 치는 내 스타일과 딱 맞는 것 같다. 괜히 피해 가려다 실수하는 것보다 100배 낫다. 그 모습을 갤러리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

● 지금까지 골프대회에서 ‘예고 플레이’를 한 선수는 없었다.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드라이버 샷은 정말 자신 있다. 올 들어 샷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다 보니 그렇게 말을 했다. 80야드 웨지 샷보다 300야드 드라이버 샷을 더 똑바로 칠 수 있다. 장타자라는 것을 더 보여주고 확인시켜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솔직히 지난해 9월(한·중KEB인비테이셔널 2차대회) 우승하기 전까지 이런 배짱이 부족했다. 그 전까지는 준우승만 3차례 하면서 위축돼 있었던 게 사실이다. 우승한 뒤 마음도 정신도 샷도 더 강해졌다. 앞으로도 원온의 가능성이 있는 코스와 상황에 따라 ‘예고 플레이’를 할 생각이다.”

● 청각장애 동생과 한 약속도 있 다고 들었는데.

“동생이 어렸을 때 아파서 청각을 잃었다. 그때 내가 막 골프를 시작(초등학교 4년)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관심은 아픈 동생보다 온통 나에게 더 쏠려 있었다. 프로가 되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그 꿈을 이루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동생의 치료비보다 내 골프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내가 프로가 됐을 때 ‘너 골프 시키느라 동생 치료를 제대로 못해준 게 많다’는 얘기를 아버지한테 들었다. 그때 아버지와 약속했다. 약속은 ‘첫 승의 영광과 우승상금을 모두 동생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투어프로 입문 2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약속’의 의미는 너무 간절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이다.”

● "갤러리가 많으면 더 힘이 난다”고 했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엔도르핀이 솟고 활력이 넘친다.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3퍼트를 해도 ‘괜찮다’는 갤러리들의 격려가 있으면 더 힘이 난다. 그런 팬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약속을 지키는 것은 그런 격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 프로가 된 이후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는.

“한 갤러리 분 때문에 생긴 일이다. 지난해에 아시아나CC에서 열린 같은 시합 때의 일로 13번 홀(파4·340야드)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섰을 때다. ‘꼭 원온 시켜라! 안 시키면 그냥 간다.’ 주변에서도 ‘원~온, 원~온’하며 박수가 나왔다. 그때 우드를 잡으려고 했는데 드라이버로 클럽을 바꿨다. 결국 티샷이 그린을 오버해 볼은 러프에 빠지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파 세이브했다.(웃음)”

● 베스트 샷과 워스트 샷은.

“최고의 베스트 샷은 지난 5월 매경오픈 최종일 16번 홀(파5)에서 나온 이글 샷이다. 그 이글 샷이 시즌 첫 승을 선물해 줬다. 드라이브 샷도 최상으로 날아갔지만 200야드 지점에서 5번 아이언으로 친 두 번째 샷이 그린 에지에 맞고 핀 3m에 붙었다. 그 덕분에 김경태 선배를 4타 차로 꺾을 수 있었다. 워스트 샷은 당연히 지난 4일 끝난 KPGA선수권대회 3라운드 18번 홀의 트리플보기 샷이다.”

(김대현은 이때 하이브리드로 친 티샷이 워터해저드에 빠지면서 트리플보기를 해 3타를 잃었다. 웬만한 선수 같으면 화가 나서 숙소로 돌아갔겠지만 그는 웃는 얼굴로 줄을 선 갤러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줬다.)

● 어떤 목표를 가졌는가.

“올해는 ‘상금왕’이 목표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내년 미국 PGA투어 퀄리파잉(Q) 스쿨을 통과해 PGA 무대에 입성하는 일이다. 그리고 2년 이내에 PGA투어 1승을 하는 것이다. ”

글=최창호 기자
사진=민수용골프포토 제공



j 칵테일 >> 효심의 드라이버

‘완전한 공격수’로 평가받는 김대현은 “OB(아웃 오브 바운드)의 두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어떤 훈련을 했기에 80야드 웨지 샷보다 300야드의 드라이브 샷을 더 똑바로 칠 수 있을까. 대구가 집인 그는 주니어 시절 아버지와 함께 구미 수우동 낙동강변의 들판을 자주 찾았다. 그곳에는 17만㎡(약 5만 평) 부지에 직선 거리로 350~400m나 되는 잔디묘장이 있었다. 정식 연습장은 아니었지만 5000원을 내면 하루종일 잔디 위에서 샷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폐쇄됐지만 2007년 봄까지 자주 이용했던 곳이다. 김대현은 그곳 300m 지점에 깃발을 하나 꼽고 드라이브샷을 날렸다. 볼을 본인이 직접 가져가야 하고 또 직접 주워야 한다. 100개의 볼을 치면 그 볼을 줍는 것은 300m 밖에 있는 아버지의 몫이었다. “정말 깃대를 향해 똑바로 치지 않으면 안 됐어요. 한여름 햇볕 아래에서 2~3시간씩 그 볼을 다 줍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타깃을 벗어나 삐뚤어지게 치며 그만큼 아버지는 힘들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더 똑바로 정확히 그 지점까지 볼을 보내야 했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6년 때부터 그렇게 훈련한 덕분에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볼을 치면 90% 가까이 목표지점에 볼을 떨어뜨릴 수 있죠.” 3개월에 드라이버 1개씩을 깨먹었다는 김대현은 “백스윙 때 팔이 아닌 왼쪽 어깨로 스타트해야 기본적으로 몸의 꼬임(회전)이 좋아져 강력한 샷을 만들 수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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