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한심한 판결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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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법부의 선거법 위반 판결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은 한심하다. 이틀 전 서울고법은 선거법을 어긴 민주당 의원 4명을 놓고 한명만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형량을 내리고, 나머지 3명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형량을 선고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김용균(金容鈞)의원은 자기 당 의원총회에서 "1심 재판은 호남 출신이 재판장을, 2심은 충청도 출신이 맡았다. 사법부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걱정스럽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매사를 지역 연고에 기대 판단하는 지역주의로 사법부를 재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한나라당의 법의식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균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법부 폄하의 오만한 자세다. 8·8 재·보선 대상 지역 중에서 선거법 위반이 사유가 된 다섯곳에는 당초 민주당 의원이 당선됐던 두 지역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 의원들의 금배지를 떼게 한 앞서의 판결도 판사의 출신지역 덕분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그런 발언이 앞으로 선거법 위반에 대해 계속될 사법부 판단을 압박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면 더욱 개탄스러운 일이다. 金의원의 표현대로, 법리나 사실관계를 뒤로 돌린 채 판사의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법의 결정이 달라진다면 이게 어디 법치사회인가.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金의원이 변호사(군법무관 출신)자격을 갖고 있고, 당내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법률지원단의 단장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한나라당 내 법의식과 수준이 겨우 이 정도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요즘 한나라당은 지연·학연을 따지지 않는 히딩크의 축구 경영학을 정치에 도입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연고주의에 꼼짝없이 얽매여 있는 발언이 나와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문제의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해야 한다. 金의원에 대한 징계도 뒤따라야 한다. 판사 출신인 이회창 후보가 어떤 조치를 내릴지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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