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청산 다짐 겉치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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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이 6·13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당 내분을 일단 추슬렀다. 국정의 한 축으로서 민주당이 당직개편 등을 통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다행스럽다. 8·8 재·보선까지의 미봉(彌縫)이라 할지라도 원내 제2당이 더 이상 표류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한화갑 대표 체제가 내분 수습과 동시에 부패청산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재·보선을 의식한, 다분히 정치적 제스처 성격이 강하지만 민의에 적극 부응한다는 점에서는 수긍이 간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는 민주당이다. 그것은 내분 정리과정의 모순과, 부패청산 다짐이 겉치레로 흐를 소지가 큰 데에 있다.

내분 갈등 봉합에서 집단지도체제 존폐 여부가 핵심 논란거리였다. 이 제도 도입을 주도했던 쇄신파의 폐기 주장은 선거 패배 책임 떠넘기기와 국면 호도에 급급했음을 말해준다. 비주류의 공세를 뿌리치고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는 차원에서 서두른 흔적이 역력한 것이다.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의혹이 선거를 망치게 했다며 아태재단 사회 환원, 김홍일 의원 탈당 등 '탈(脫)DJ'에만 매달리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게이트 비호와 줄서기에 열을 올렸던 자신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없이 '네 탓'을 외치는 것은 비겁한 처신이다. 또 '노무현 프로그램'을 말하지만 거론되는 내용들은 거의가 개정된 지 얼마 안된 것들이다. 손볼 부분이 없지 않겠으나 마치 제도상 결함으로 권력형 비리가 난무한 듯 가장하는 것은 속보이는 처사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6·13 민의를 존중하고 자기 쇄신에 나설 각오라면 우선할 일은 '식물국회'를 되살리는 것이다. 민생법안 처리와 검찰 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권력형 비리 청문회 등을 통해 민심을 위무하고 의혹 해소를 돕는 게 프로그램의 기본이어야 한다. 행여 국회직 배분을 빌미로 정상화를 지연시켜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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