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한·중 고구려 토론회' 왜 쉬쉬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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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21,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고구려 문화의 역사적 가치'를 주제로 한.중 학술대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한국의 고구려연구재단(이하 재단)과 중국의 사회과학원이 공동 주최한 이 토론회는 참석자와 발표 논문은 물론 개최 장소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비공개'에 대한 궁금증은 28일 중국에서 돌아온 재단 측이 연 기자간담회에서도 풀리지 않았다. 중국측과 합의해 만들었다는 보도자료만 낭독할 뿐이었다. 거기엔 이미 다 알고 있는 토론회 개최 사실과 "최고 수준의 학술토론회였다"는 자화자찬만 있을 뿐 '비공개'사유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기자들의 항의성 질문이 잇따르자 고작 내놓은 것이 이번에 슬라이드로 공개된 '광개토대왕비 탁본'이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쉬젠신(徐建新)이 베이징에서 발견한 가장 오래된 탁본이라고 주장했다고 하나, 한국 측 학자들도 실물을 보지 못한 상태라 아직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상태다.

'고구려 토론회'를 이렇게 쉬쉬하며 무슨 첩보영화 찍듯 진행해도 좋은가. 고구려사와 관련된 양국의 '대표 선수'끼리 맞붙은 첫 토론회라는 의미는 '과잉 은폐'로 인해 퇴색됐다.

재단 측은 "중국 사회과학원 측이 비공개를 요청했다"면서 "언론에 공개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 다른 데 신경 쓰지 않으면서 학술대회에만 전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할 한.중 고구려 토론회도 '비공개'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불필요한 오해의 생산자는 양국의 고구려 연구자들 아닌가. 한국-중국 사이에 2000년 전의 고구려 역사를 놓고 '역사 충돌'이 일어나게 된 데는 보편적 연구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정치와 여론의 뒤를 좇기에 급급한 사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다. 연구자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없이 엉뚱하게 '오해'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려선 안된다는 얘기다.

이번 사안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학계와 한국의 학계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중국 측 요구에 따라 쉬쉬하기 보다 공개적인 방법으로 보편적 설득력을 가진 토론이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고구려사=중국사'를 주장하는 중국 측과 그에 반박하는 한국 측 논리 사이에 극단적으로 나올 주장도 이미 다 나왔다. 보다 정교하고 미시적인 연구 업적과 함께 내년엔 고구려연구재단이 중국과 다른 역사의 큰 길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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