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戰에 놀란 스페인 한국 보는 눈 확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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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이 참 어렵고 못살았는데 이제 이렇게 발전해 축구에서 유럽의 강호를 줄줄이 쓰러뜨리는 걸 보니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막 나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탈리아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직후 한 스페인 할머니가 이곳 마드리드 무역관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콜롬비아 사람인 남편이 한국전에 참전해 전사한 것을 인연으로 그동안 한국을 눈여겨 봐왔다는 이 할머니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계속 울먹였다. 한국의 8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이같은 축하 전화가 쇄도해 무역관 직원들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리 무역관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스페인 바이어들을 초청해 한국에 보냈다. 기계류 구매단과 종합품목 구매단 등 두 팀이다. 한국-이탈리아전이 열리던 날 상담을 마치고 서울시청 앞을 찾은 바이어들은 한국 국민이 혼연일체가 돼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세상에 이런 민족은 다시 없다며 감동을 받아 울었다고 전해왔다. 남의 나라 일로 감격해 흘린 스페인 사람들의 눈물까지 더해 이래저래 이번 월드컵은 눈물과 감동의 한마당인 것 같다.

이탈리아전이 끝난 다음날부터 이곳 무역관의 아침 인사는 '대~한민국'이다. 스페인 현지 직원들도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며 '대~한민국'을 외친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놀라운 투혼과 우리의 단합된 응원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이다.

한국팀이 8강에 오른 다음날 아침 일찍 무역관으로 스페인 CNN+ 방송국 기자들이 카메라를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한국에 관해 취재하는데 협조해 달라면서 전직원을 대상으로 돌아가며 인터뷰를 했다. 한국-스페인전에선 누가 이길 것 같으냐, 스페인을 이긴다면 다음 4강전 상대로는 독일이 좋으냐, 미국이 좋으냐는 등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한국 직원들을 놀라게 한 것은 현지 직원들이 스페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승리할 가능성을 거론하는 대목이었다. 축구의 나라 스페인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이번 월드컵 취재를 위해 모두 2백8명의 스페인 기자가 방한했다고 한다. 이들이 보내오는 엄청난 양의 한국 관련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스페인 국민에게 전달되고 있다. 초기엔 보신탕을 문제삼는 등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았지만 어느 틈엔가 대부분 긍정적인 기사로 바뀌었다.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경기장 시설·운영은 훌륭하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발전한 나라라는 것이 공통적 시각이다.

유럽에서 월드컵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관심과 열기 면에서 올림픽과는 상대가 안될 정도다. 축구 실력이 국력에 비례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일본과 완전히 대등한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의 확실한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적어도 유럽에서만큼은 우리의 국가 이미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리라고 전망한다.'메이드 인 코리아'는 '메이드 인 재팬'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대기업 제품은 물론 중소기업 제품도 국가 이미지가 상승한 혜택을 적지 않게 보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제품들은 유럽시장에서 날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참으로 흐뭇하고 가슴 뿌듯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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