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원리냐 시장역행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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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25년만에 손질된 재정경제부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무성하다.

개정안의 방향은 시장의 문턱을 낮춰 업체간 경쟁을 유도하고 고객을 최대한 보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망하는 보험사가 나올 경우 다른 보험사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반(反)하며, 이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고객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 등이 나오고 있다.

◇자율경쟁 촉진이냐,고객부담 가중이냐=개정안은 인터넷 특화보험사 등 한 종목만 취급하면 자본금 25억원으로 보험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자본금 요건은 최소 1백억원이다. 금융기관의 진입·퇴출을 자유롭게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미니 보험사'들이 출현하면 고객들은 다양한 상품에 싸게 가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고객에게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의 자본금은 고객에 대한 '보증금'인 셈"이라며 회사가 파산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또 작은 보험사라도 상품 판매만 하는 '대리점'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사정 등 보험사 본연의 업무가 많은데 25억원이란 적은 돈으로 이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험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긴 뒤 망하는 보험사가 나오면 결국 고객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지적이다.

대기업의 보험업 참여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보험개발원 오영수 연구조정실장은 "외국의 큰 보험사가 국내에 속속 들어오는 마당에 국내 대기업의 진입을 막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보험사 대형화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객보호와 시장원리=자동차 책임보험 등 의무보험에 가입했다가 보험사가 망해도 전액을 보상받는 방안에 대해 가장 반대하는 것은 당연히 보험사 측이다. 무리한 영업으로 망하는 보험사가 생길 경우 보험업계가 이를 나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정상적인 가입자의 보험료를 올리게 되므로 오히려 시장원리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한 손해보험회사 관계자는 "보험료는 계약자 돈인데 어느 한 회사가 경영을 잘못해 파산했다고 해서 나머지 회사가 돈을 갹출해 메워준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무리한 영업을 하다 망한 회사가 나오면 정상적인 보험사에 가입한 고객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꼴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보험상품 감독권 다툼=새 보험상품을 내놓을 때 일단 판매에 들어간 뒤 보험개발원에 상품내용을 신고하도록 한다는게 개정안의 내용이다. 현재는 판매후 15일 이내에 금감원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금감원의 규제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상품 개발이 제약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개발원은 보험사 사장들이 이사를 맡고 있어 보험사의 외곽단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곳에 상품심사를 맡기는 것은 문제라고 금감원은 반대한다.

금감원의 김건민 상품계리실장은 "현재도 신고된 상품을 심사해보면 상당수가 불량상품이라 꼼꼼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재경부도 보험개발원이 악의적인 상품을 제대로 걸러낼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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