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日 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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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축구의 한계는 16강까지였다.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은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한 뒤 이후 경기는 일본엔 '보너스'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이 기대했던 보너스는 더 이상 없었다. 터키의 한단계 높은 파워·압박축구의 벽 앞에서 일본열도는 이날 내린 비처럼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다.

일본이 18일 미야기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터키와의 16강전에서 0-1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일본은 경고 누적으로 핵심 전력이 빠진 터키를 가볍게 제압하고 세네갈과 8강전에서 맞붙겠다는 포부였지만,'투르크 전사' 터키는 너무나 강했다. 하산 샤슈·하칸쉬퀴르·일디라이 삼각편대의 공격력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강력한 압박으로 미드필드에서 우위를 점한 터키는 삼각편대의 위협적인 돌파를 앞세워 견고한 일본의 수비진 '플랫3'를 농락했다.

조별리그에서 2골·2도움의 맹활약을 펼친 하산 샤슈와 하칸쉬퀴르를 투톱으로 세운 터키는 경기 초반부터 과감한 태클로 일본을 압박했다. 투가이를 앞세운 터키의 미드필드진은 일본 공격의 핵 나카타 히데토시와 오노 신지의 볼배급을 한발 앞서 차단한 뒤 예리한 전진패스로 공격의 물꼬를 텄다.

결승골이 된 선제골이 터진 것은 전반 12분. 일디라이의 날카로운 오른쪽 코너킥을 위미트다발라가 정확한 헤딩슛으로 연결했다. 일본 수비진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혼자 점프해 따낸 골이었다.

기선을 잡은 터키는 하산 샤슈의 빠른 중앙돌파를 앞세워 더욱 집중력 높은 공격을 퍼부었다. 전반 26분에는 하칸쉬퀴르가 아크 정면에서 떨궈준 헤딩패스를 하산이 슈팅을 날렸지만 골포스트를 넘었다.

일본은 산토스 알렉산드로·니시자와 아키노리를 공격 전면에 내세우는 깜짝 선수기용을 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패착이었다. 벨기에전에 잠깐 기용됐던 산토스와 본선에 첫 출장한 니시자와는 공격감각이 둔해진 듯 결정적인 찬스를 수차례 놓쳤다. 전반 40분 산토스의 예리한 크로스패스를 니시자와가 머리도 갖다대지 못하고 뒤로 넘기는 등 공격진의 호흡도 맞지 않았다. 2분 뒤에는 아크 왼쪽에서 나카타가 얻어낸 프리킥을 산토스가 왼발로 감아찬 게 오른쪽 골대 모서리를 맞고 튀어나오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나카타는 투가이와 파티에게 자주 볼을 빼앗기는 등 터키의 철저한 압박수비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은 후반 스즈키 다카유키 등을 투입, 반전을 노렸지만 골 결정력 부족으로 끝내 터키의 골문을 열진 못했다.

경기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도다 가즈유키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이 눈물은 한단계 높은 세계축구의 벽 앞에서 일본열도가 흘린 눈물이기도 했다.

미야기=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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