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6 강 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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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마침내 이루었다. 16강이다. 1882년 6월, 영국 전함 플라잉 피시호 갑판에서 축구볼이 내려진 바로 그곳 제물포, 한국 축구의 고향 인천에서 역사가 이루어졌다. 정확하게 1백20년 만에 아시아의 동쪽 끝, 세계 축구의 변방에서 한국 축구가 세계로 성큼 도약했다.

한국은 14일 인천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02 한·일 월드컵 D조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25분 박지성이 터뜨린 결승골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세계랭킹 5위 포르투갈을 1-0으로 꺾었다. 2승1무(승점 7)로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당당한 조 1위.

미국은 같은 시간 대전에서 열린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1-3으로 패했으나 1승1무1패(승점 4)로 조 2위가 돼 16강에 턱걸이하는 행운을 누렸다.

한국은 오는 18일 오후 8시30분 대전에서 G조 2위인 이탈리아와 8강 진출을 다툰다. 미국은 이에 앞서 17일 오후 3시30분 전주에서 G조 1위 멕시코와 대결한다.

4천만의 염원이 하나가 된 이날 전국 방방곡곡, 큰길과 골목들은 이제 막 흘러넘치는 용암처럼 붉게 물들었다.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은 먼 우주의 끝자락까지 갔다가 메아리쳐 돌아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예언처럼 온 세계가 놀랐고 국민은 환호했다.

이날은 아시아 축구 영광의 날이었다. 공동 개최국 일본도 16강에 올랐다.

H조의 일본은 오사카에서 튀니지를 2-0으로 완파하고 2승1무의 전적으로 역시 조 1위로 2라운드에 합류했다. C조의 중국과 E조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줄줄이 3연패로 탈락하며 체면이 바닥에 떨어졌던 아시아 축구는 한·일 양국의 선전으로 자존심을 회복했다.

한국과 일본의 16강 진출은 아시아 축구의 가능성을 웅변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조별 리그 세 경기에서 무려 12골을 내주고 무득점, C조의 중국이 9골을 내주고 무득점에 그쳐 아시아 축구에 대한 냉소와 비아냥이 흘러나오던 터였다.

주심의 휘슬이 길게 울리고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한반도가 들썩거렸다. 차량들은 축하의 경적을 울렸고 붉은 옷을 입은 열두번째 선수들은 어깨와 어깨를 걸고 한국 축구 새 역사의 출발을 축하했다. 시가지는 몰려나와 환성을 지르고 축하를 나누는 시민들로 밤늦도록 붐볐다.

허진석 기자

▶거스 히딩크 한국 감독의 말

오늘 경기에 만족한다. 한국 국민의 숙원을 풀게 돼 나도 기쁘다. 우리는 오늘 포르투갈에 찬스를 거의 내주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주앙핀투가 퇴장당하면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무승부만 기록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극적으로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큰 경기를 치르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안토니우 올리베이라 포르투갈 감독의 말

우리는 이런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놀라운 투혼을 발휘한 한국팀의 플레이를 칭찬하고 싶다. 우리 선수들도 잘 싸웠다. 후반전에 골을 터뜨릴 기회가 있었는데 운이 따르지 않았다. 주심의 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나는 주심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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