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도시가치↑… LED로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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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미국 도시 가운데 뉴욕 다음으로 많은 가로등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가로등만 대략 20만9000개다. 가로등이 매년 소비하는 전력은 1억9700만kwh.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연간 1500만 달러에 이른다. 시는 지난해 오래된 가로등을 에너지 효율이 좋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시는 조명 교체로 4만500t의 탄소 배출을 줄이고 유지관리비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달 말 개최된 싱가포르 도시정상회의에서 올리비에 피콜린 필립스 조명사업부문 아시아·태평양지역 사장은 “세계 전력 소비량의 19%는 거리·빌딩 등의 조명에 쓰인다”며 “LED 조명으로 교체하면 조명용 전력 소비량을 40%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 쳉(TSENG) 도로. LED 조명이 사용된 왼쪽 도로가 그렇지 않은 오른쪽 도로보다 밝다. 전력 소비량도 40%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필립스 제공]

LED 조명 하나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더 있다. 급격한 도시화로 늘어나는 범죄, 이웃과의 소통 부족, 경관 파괴 등 여러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사이먼 태이 싱가포르 국제연구소 소장은 “기회가 많은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 그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하게 마련”이라며 “조명만으로도 도시를 더 안전하고 멋지게 꾸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리즈시는 가로등을 LED 조명으로 바꾼 이후 범죄율이 30%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를 부르는 으슥하고 후미진 공간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밝은 거리는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EPTED)’ 기법에선 단골 메뉴다. 밝은 도시는 야간 활동을 늘려 사회적 통합과 소통에도 기여한다고 회의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스페인에서 열린 ‘2008 사라고사 엑스포’에 선보인 사람 모양의 LED 조형물.

독일에서는 학교의 조명 시스템을 LED 중심으로 바꿔 학생들의 읽기 속도를 35% 향상시킨 사례가 보고됐다. 올바른 조명이 학생들의 학습 효율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조명 교체 후 학생들의 이상행동도 70%나 줄었다고 한다.

조명에는 도시의 상징성이나 이미지를 빚어내는 힘도 있다. 피콜린 사장은 “야경이 아름다워져야 도시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또 LED 조명은 수명이 길어 잦은 교체에 따른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납세자와 의회가 반길 만한 얘기다.

그렇지만 전면적인 조명 교체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피콜린 사장은 “예산 고민을 하는 도시들에는 금융회사를 끌어들여 낮은 금리 또는 무담보로 대출을 받아 고효율 조명으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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