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원평가제 좌초, 국회는 보고만 있을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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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부터 전면 시행된 교원평가제가 안착(安着)은커녕 좌초될 위기다. 진보 교육감들이 제도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취임 당일인 지난 1일 ‘교원평가제 시행에 관한 규칙 폐지 규칙안’을 입법 예고했다. 아예 교원평가제의 근거 규정을 없애 제도를 원천 무효화하려는 의도다. 대부분 학교에서 1학기 말까지 평가 절차를 완료할 예정인 교원평가제가 시행 도중에 무산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서울시·경기도 교육감들도 올해는 그대로 시행하지만 향후 동료 교사 평가를 없애는 등 제도의 틀을 확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교원평가제의 근본 취지가 흔들리고, 학교 현장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교원평가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법제화가 안 된 탓이다. 교원평가제는 도입 논의 10년, 시범학교 운영 5년이 지난 해묵은 과제다. 그런데도 국회는 전교조 등의 눈치를 보느라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허송세월(虛送歲月)만 했다. 급기야 교원평가제 시행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가 올해 시·도교육청별 ‘교육 규칙’을 만들어 강행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교육 규칙 제정과 폐지는 교육감의 권한이어서 교육감이 마음만 먹으면 교원평가제를 무효화하거나 입맛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니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를 중심으로 중·고생들마저 교원평가 반대 서명운동에 나서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 판이다.

교원평가제는 교사의 전문성 향상으로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정착시켜야 할 제도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도입 초기의 혼란이나 미비점은 보완해 나가면 될 일이다. 국회는 일관성 있게 제도를 시행할 수 있도록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 여야는 지난해 관련 법안의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대안을 마련해 법안심사소위를 통과시켰고, 공청회를 통해서도 상당 수준의 합의에 이른 바 있다. 정치권 의지만 있다면 미흡한 부분을 다듬어 연내 입법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 교육현장의 혼란상을 정돈하기 위해서도 국회는 교원평가제 입법화를 서두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