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과 문화

품위있게 죽어갈 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나는 살인한다. 그리고 감옥에 간다. 지금 일어나서 이 방을 나간다. 그렇게 할 것이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님이 병원에 실려 갔다고, 뇌사 상태에 이르렀다고. 그 친구의 남편은 외국 출장 중이고 친구는 병원에 홀로 있다, 보호자로서.

담당 의사가 묻는다. 지금 산소호흡기를 장착하지 않으면 곧 운명하시는데 어쩔 거냐고.

남편이 오고, 멀리 사는 시누이가 오고, 가족과 친지가 임종을 지켜보고… 이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친구는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어 가는 사람을 어떻게 할지 안타까운 심정에 가슴이 답답하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한 번 산소호흡기를 끼면 뺄 수 없다고. 그러면 법에 저촉돼 친구와 의사는 범법자가 된다고.

결국… 드디어… 뇌사 상태의 노인 몸에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 피가 나온다. 그러면서 산소호흡기를 장착한다. 식물인간이 된 몸에 온갖 주사기가 꽂힌다. 그걸 친구 혼자 바라본다.

나의 남편도 죽기 직전까지 온갖 주사를, 온갖 처치를 몸에다 받았다. 이미 내장이 굳어져 연동운동이 멈춘 상태인데도 무슨 약품인가를 항문을 통해 힘들게 몸속에 넣었다. 그 과정이 처참하고 비참했다.

주변의 누군가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냥 조용히 좀 놔두면 안 되나요?'하고 물었다. 의사가 대답했다. '여기가 호텔입니까? 가만히 놔두면 호텔이지 그게 병원입니까?'

그때 나는 다 알아버렸다. 병원에서는 품위 있는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없구나. 병원이라는 데는 최후까지 기를 쓰고, 치료 행위라고 불리는 짓을 해대야 하는 집이구나.

더위가 아직 남아 있던, 초가을 어느 날. 중앙일보 기자가 나를 보자고 했다. 웰빙이 문제이듯 웰다잉 또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남편의 죽음에 관해 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통계에 의하면,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번 돈을 죽기 직전 몇 달 동안 다 쓴다고. 충격이다. '존엄사가 문제'라고 의기투합했다. 품위 있게 죽어갈 권리에 대해서도 침 튀기면서 서로 외쳐댔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을 기억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돈을 천천히, 원도 한도 없이 쓰면서 죽어 가는 천박한 부자다. 그런데 그 책에는 압축된 죽음도 있다. 치킨집 주인이 보일러실에서 목매 자살한다. 암에 걸린 걸 알고 치료를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남은 가족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오늘 오후에 잎이 파란 향나무 화분을 만지면서 놀았다. 초록으로 아름다운 향나무를 만나거든 그 잎들을 벌리고 속을 들여다보라. 거죽은 파란데 속은 죽은 잎으로 가득하다. 줄기를 흔드니까 마른 잎이 바닥에 떨어진다. 이것이 생명체의 모습이다. 살아 있는 나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생장점이 있고 그 부분이 맹렬하게 성장한다는 것이지 모든 부분이 다 살아서 성장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성장이 끝나 멈춘 부분은 그 순간부터 말라 비틀어져서, 저절로 죽어서,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인공적인 화분이 아니라면 땅에 떨어져서, 썩어서, 다시 생명체로 흡수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률상 친족은 조상의 산소호흡기를 뗄 수 없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생판 남인, 용맹스러운 나는 가능하다. 나는 병원으로 가서 아직도 병상을 맴도는 친구를 심부름 보내고 나서 살인을 감행할 것이다. 내가 뇌사 상태에 이르렀는데 병원에 누워서…,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진정한 내 친구라면 나를 빨리 죽게 도와줘야 한다. 적어도 억지로 숨 쉬게 하는 장치는 안 하도록 막아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일어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다.

김점선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