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없던 ‘안다 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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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10면

1970년대 초 부산의 산복도로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지식인은 안다 형이었다. 부산역 앞 텍사스 골목으로 몰려다니며 온갖 못된 장난을 일삼는 조무래기들 사이에서 말이다. 안다 형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열서너 살 정도로 보이다가도 또 어떤 때는 스무 살을 훌쩍 넘은 어른처럼 보였다. 내 또래 조무래기들은 물론 중학교에 다니는 형들도 그를 안다 형이라고 불렀다.원래 조무래기들은 뭐든 알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들이다. 특히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라면.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궁금한 게 있으면 다들 안다 형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는 어떤 질문이든 모른다고 하지 않고 자세하고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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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하는 말은 내용은 심오하되 형식은 간결해 마치 위인들이 남긴 명언 같았다. 가령 “재능은 긴 인내다” “한낮의 빛이 어찌 어둠의 깊이를 알겠는가” “현명한 자는 친구보다 적에게서 배운다” “덕은 외롭지 않다” 같은 말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말들이 모두 형이 직접 생각해 낸 것이라는 데 있다. 형은 그것을 분명히 했다. 자신이 창안한 생각을 말할 때는 그 앞에 “나는 말한다”라는 말을 꼭 붙였다. 예를 들면 “나는 말한다. 겸손이란 평범한 사람에게는 미덕이지만, 위대한 사람에겐 위선이다”라는 식으로. 누군가 그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말이라는 사실을 지적했을 때도 형은 당황하지 않았다.

“안다. 셰익스피어가 내 생각을 표절한 것이다. 괴테도, 니체도, 공자도 모두 내 생각을 표절했다. 나는 말한다. 나는 생각하고, 그들은 표절한다.”
조무래기들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섹스가 궁금했다. 형이 가장 잘 아는 분야 역시 섹스였다. 어느 날 조무래기들은 형에게 여자의 가슴에 대해 물었다. 안다 형은 시청각 교재를 활용해 해부학적 설명부터 통속소설적인 묘사까지 답해 주었다. 그런데 입안 가득 범람하는 침을 삼키느라 개념 없던 조무래기 중 한 녀석이 이렇게 물었다.

“형은 진짜 여자 가슴 만져본 적 있어?”
그것은 새로운 형식의 질문이었다. 인식이 아니라 경험을 묻는 질문. 안다 형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형은 여자의 가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만져본 적은 없었는지 모른다. 즉답을 못하던 형이 잠시 머뭇거리던 그 잠깐 사이, 1970년대 초 부산 산복도로 동네 조무래기들의 우상이었던 안다 형의 권위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한번 무너진 권위는 되돌리기 어렵다. 오히려 권위를 되찾으려고 무리하기 때문에 더욱더 곤두박질치는 법이다. 형은 자신이 여자의 가슴을 만지는 광경을 우리 조무래기들에게 직접 보여주겠다고 했다.

한낮의 육교 위. 반대편에서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안다 형은 우리를 한번 보고는 보란 듯이 여학생에게로 걸어갔다. 형이 여학생의 가슴을 만진 것 같았다. 순간 여학생은 안다 형의 뺨을 때렸다. 쫙! 하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과장하면 육교 아래 달리던 차들이 모두 급정거할 정도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 조무래기들도 모두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여학생이 떠나고 난 뒤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형에게 다가가 물었다.
“형 왜 그래?”
얼이 빠진 얼굴로 우리를 보던 안다 형이 말했다.
“몰라.”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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