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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의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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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한반도 정세 변화

1. 1차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의 남북한은 ‘적대적 의존관계’라는 틀 속에서 서로 상대방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내부 권력을 강화하기도 했고, 상대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자폐적인 정의관(self-righteous posture)’에 사로 잡혀 있었다. 비록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남북사이의 대립갈등관계를 화해협력, 공존공영관계로 발전시킬 것을 약속한 것은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선언을 현실로 뒷받침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남과 북이 반세기 이상 지속해왔던 ‘적대적 의존관계’를 청산하고 ‘호혜적 의존관계’로 발전시키는 데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변화 여부 논쟁, 대북지원과 관련한 ‘퍼주기’ 논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의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과 관련한 통일논쟁, 대북송금 관련 특검수사 진행 등으로 ‘남북화해시대의 남남갈등’이란 역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신․구 패러다임간에 첨예한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북쪽사회도 미국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의 대북 강경정책의 추진과 9.11 테러사태 이후의 정세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남북관계 진전에 심한 기복을 보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해체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냉전구조를 해체한다는 것은 정전질서에 기초한 냉전구조를 화해협력의 평화구조로 바꾸는 구조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기존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현상타파세력’의 노력에 우려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현상유지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남북 화해협력(‘민족공조’)의 진전에 따라 전통적인 한미관계 우선에서 남북 화해협력의 비중을 높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정상회담은 분쟁 당사국간의 현안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대화방식이다. 아무리 어렵고 해묵은 분쟁이라고 하더라도 분쟁당사국간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쌍방간의 신뢰조성과 분쟁해결의 극적인 전기를 마련한 전례는 많다. 특히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북한이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심하면 남북관계의 극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도 최고당국자간의 회담이 남북간 현안문제 해결에 가장 효율적인 회담방식이란 점이 입증됐다. 북한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논리가 지배하는 ‘당-국가체제’이다. 북한사회는 무오류성이 보장된 ‘당의 중앙인 영도자(후계 수령인 김정일 총비서)’가 결심하면 무조건 관철해야 하는 ‘수령제 국가(수령-당-국가의 유일체제)’이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공동선언에 서명했다는 것은 합의문 이행에 대한 일종의 자기 구속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지도자(영도자)’가 통일사업에 나선 이상 인민대중들에게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남북당국간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오는 등 6.15 공동선언 이행에 적극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6.15 공동선언의 이행, ‘우리민족끼리이념’ 및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것 역시 무오류성이 보장된 북한 최고지도자의 결심에 대한 무조건적 관철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2.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

남북한 최고지도자간의 담판에 의해서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의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혹으로 형성된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를 막고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 즉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구도가 정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주변 4강의 대한반도 영향력 경쟁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1차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한․미․일간의 공조에는 다소 ‘이완’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반면, 북한의 중․러와의 관계개선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과의 수교 이후 소원해졌던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점차 회복하고 있다. 중․러는 탈냉전 이후 동북아 지역에서 ‘개입과 확대전략’을 추진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미국의 ‘패권추구’를 경계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이라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1항을 주목하면서 주한미군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더 이상 핵 위험국가로 분류되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에 주둔할 필요도, 동북아에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할 명분도 없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국내문제 등으로 한반도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4자회담에서의 소외와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자극을 받아 북한과 2000년 2월 9일 ‘조-러 우호선린협조조약’을 체결하는 등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른바 ‘남북한 균형외교’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복구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개입과 확대전략과 미.일.한의 삼각안보협력체제 강화, 중국․러시아의 북한과의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 복원에 따른 ‘신동북아 질서’는 남북관계에 중요한 영향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행정부가 대북강경책을 구사하면서 MD 체제 구축을 강행할 경우 북한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 북방삼각관계가 복원되면서 동북아지역에서의 ‘신냉전 질서’가 구축될 수도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혹을 빌미로 MD 체제를 구축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할 경우 군사적 제재인 ‘외과수술식 공격(surgical strike)’의 가능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MD 체제 구축을 강행할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서 ‘신냉전 질서’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MD 체제 구축을 강행할 유인으로는 먼저,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을 통해서 경기침체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잠재적 경쟁자’ 또는 ‘잠재적 적’인 중국과 러시아가 여력이 없을 때 MD 체제를 구축하여 이들 나라들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 중심의 유일패권 질서유지를 위해 미국이 MD 체제 구축을 강행하면 한국의 입장은 매우 어렵게 된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소련-중국-북한의 북방삼각관계와 미국-일본-한국의 남방삼각관계의 대치점이 휴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냉전과 함께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했고, 이들 국가와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북방삼각관계와 남방삼각관계의 중첩된 위치에서 쉽게 어느편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그래서 어느편의 입장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 나온 말이 ‘전략적 모호성’이란 개념인 것 같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말에 있었던 한-러정상회담에서는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의 강화에 동의하고, 한미정상회담에서는 MD 체제구축에 동의하는 듯한 공동발표문이 나오는 모순이 생긴 것도 우리 정부의 고민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 주도의 MD 체제구축과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도 탈냉전 이후 변화된 동북아 신질서의 역학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Ⅱ.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

1.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북한 고농축 우라늄(HEU) 핵개발 의혹 제기 등으로 한반도에는 2차 북핵위기 상황이 진행 중에 있다. 이에 연동돼 남북관계도 기존 합의사항 이행에 주력할 뿐 새로운 관계 진전을 모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북-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한.미.일 3국은 ‘대화와 압력의 병행전략’에 따라 북핵문제 해결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북-미간 입장차이로 북핵문제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 현안문제 해결을 미루면서 북핵문제 해결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6자회담 등을 통해서 국제사회와 핵문제 해결 노력을 지속하면서 남북 교류협력과 긴장완화 노력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3600여명의 이라크전 차출과 1만2500명 추가 감축논의 등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안보공백’ 우려를 남북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노력을 통해서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화해협력, 공존공영을 합의한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한반도정세가 불안정한 것은 북핵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정전협정에 기초한 북-미간 ‘교전관계’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무력충돌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현안인 북핵문제 해결, 주한미군 재배치 및 역할 변경과 관련한 남북한의 안보불안감 해소 등과 함께,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노력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와 남북 현안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유보됐던 2차 남북정상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해야 한다. 정상회담은 남북간의 주요 현안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해결방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은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란 의미가 있으며,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촉진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의 9.11 테러사태 이후 위기의 한반도정세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우리 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의 지속 등 남북대화를 통해서 북한의 안보불안감을 덜어주고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적극 모색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특사교환이나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북핵문제가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현재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핵문제 등 한반도 현안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004년 5월 22일 평양을 또 다시 방문하여 납치문제와 북-일 국교정상화문제를 논의한 것도 북핵문제와 북-일 현안문제해결을 연계시키면서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한국 정부도 북핵문제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북핵문제와 기타 남북현안을 분리하여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2. 노 대통령의 시기상조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004년 7월 21일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구구한 억측과 설이 난무했던 남북정상회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남북관계에 대해 대화할 마음이 준비가 됐을 때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하고, “지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기대하거나 종용하기에는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남북간 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북핵과 남북관계 진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이를 감안할 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데서 그 근거를 찾았다. 더욱이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큰 진전을 보이고는 있지만 해결의 키를 쥔 미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장 회담을 갖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거듭 확인했다. 이에 따라 그간 연내, 특히 11월 2일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북한 정부가 은밀히 추진중이라는 일각의 관측은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참여정부’는 2003년 5월 15일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노력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추가적 조치의 검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핵문제와 남북교류협력을 ‘조건부로 연계’시킴으로써 대북 압박의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참여정부는 집권 이후 현재까지 북핵문제의 평화적 조기해결을 위해서 국제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외국인 투자 확대와 국내 경기 활성화 등이 어렵다는 현실인식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대미정책에서 대등한 관계 설정보다는 한미공조 강화를 통해 미국에 힘을 실어주면서 북핵 문제의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이는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미국이 쥐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 결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남북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경협을 병행해서 추진한다’는 기존정책의 변화를 암시했다. 그러나 한미정상의 이러한 합의 이후에도 남북 교류.협력은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정상이 ‘정경연계’를 시사한 것은 북한 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대북 압박의 일환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만,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존의 ‘병행전략’에서 ‘연계전략’으로 정책전환을 시사함으로써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점을 강조하여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이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평화번영정책’을 통한 남북화해를 가속화하지 못하고 북핵문제의 조기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에 주력하고 있다. 2002년 10월 북한 핵개발 의혹이 다시 불거진 지 2년이 지났다. 2003년 5월과 6월 한․미․일 3국은 일련의 정상회담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회의(TCOG) 등을 통해 ‘대화와 압력의 병행전략에 의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마련했다. 대화와 압력의 북핵해법에 따라 국제사회는 한편에서는 3자회담에 이어 6자회담을 진행하는 등 다자대화 틀을 마련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주도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한 대북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난 7월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시기상조론’을 편 데는 아직 북핵해결의 큰 틀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미국, 일본 등과의 북핵공조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북핵해법과 관련한 ‘건설적 제안’을 내놓고 북한의 답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북핵해결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 같다.

3. 남북관계 정체와 대북특사 파견문제

8월초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과 9월말에 열릴 예정이었던 4차 6자회담이 열리지 못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지 2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한반도문제가 미국 대선의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남북관계 정체가 길어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대북특사 파견 논의가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지난 10월 12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특사 파견 문제와 관련,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해주신다면 적극적으로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대북특사 파견론에 대해서도 “초당적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특사로 거명된 두 사람은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적이 있는 전직 대통령과 야당대표다. 이 두 분이 특사로 거론되는 데는 김정일 위원장과 말이 잘 통하는 인물이 특사가 돼서 남북당국간 오해를 풀고 현안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자는 의도일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14차례의 장관급회담이 열리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접촉과 대화를 지속해왔다. 김대중 정부 때는 가끔 남북 당국간 대화가 중단되면 ‘임동원-김용순 특사라인’ 등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곤 했다. 그리고 남과 북은 상호 특사교환을 통해서 ‘간접화법의 정상회담’을 지속해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과 관련한 특검 수사와 관련자 처벌로 이전 정부의 특사라인을 더 이상 활용하기 어렵게 됐다. 북측의 특사였던 김용순 대남당당비서와 대남일꾼인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사망함으로써 남과 북의 특사라인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공식적으로 드러난 특사라인은 없지만 그동안 그런 대로 남북간 의사소통채널은 유지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핵문제와 남북정상회담 등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최고지도자의 ‘뜻을 받들어’ 막후에서 정책협의를 추진할 필요도 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공개된 장에서 하는 말과 막후에서 하는 말이 다를 수 있다.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평가하고 남북관계의 각종현안을 조율하는 장관급회담은 관례대로 3개월에 한 차례 정도 개최하고, 장관급회담에서 풀기 어려운 현안문제가 발생하면 특사교환 등 막후접촉을 통해서 최고지도자간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대북문제의 국내 정치적 활용 가능성에 대한 야당의 비판과 남남갈등 등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특사교환 등의 정책수단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사파견은 외교의 한 수단이기 때문에 현안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서는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다만 현 단계에서 대북특사는 현 정부의 관련 인사가 맡아야 하고, 미국 대선 이후 인 지금부터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뜻을 전달하는 간접화법의 정상회담 효과를 가지려면 현 정부의 책임 있는 당국자가 대북특사가 돼야 하고 미국 대선이라는 불확실성이 해소된 지금이 대북 특사 파견의 적절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거론된 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현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마지막 수단의 하나로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효용성이 높지 않고 가능성도 희박하다.

다만 김대중 전대통령의 경우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형식으로 북한방문이 이뤄진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6․15 공동선언의 서명 당사자들이 다시 만나 한반도정세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핵문제 등에 대한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한다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김 전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 위원장이 핵개발 포기선언과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실천조치를 취한다면 혹시 노벨평화상이 주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김정일 위원장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날이 온다면 한반도 냉전구조는 해체될 것이다.

4. 2차 정상회담 조기개최론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4주년을 맞아 남과 북은 우발적 충돌방지와 상호 비방중지 등 초보적 수준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를 2004년 6월 15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갈등 등으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분명 남북관계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지속하고 있으며 철도.도로를 연결하고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에서 보면, 북한 핵문제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해결 우선주의’에 따라 북핵해결 이후까지 남북정상회담을 미룰 경우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북핵문제는 6자회담 등 국제협력을 통해서 해결하는 노력을 지속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조기에 개최하여 핵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등 남북현안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해왔다는 점과 북한 핵개발 의혹 제기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리비아 방식의 선 핵폐기(CVID)’를 주장하면서 ‘시간 끌기’를 지속해왔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북핵문제의 조기 해결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문제의 국제화를 막고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 구도를 정착시키는 의미가 있다. 2차 북핵위기로 한반도문제가 다시 국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평가하고 핵문제 등 한반도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한반도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Ⅲ.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전략

1. 1차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북한의 의도

2000년은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인 해이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에 추진했던 남한당국 배제정책 또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수정하여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포용정책과 베를린 선언의 수용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수용은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햇볕정책)’과 ‘베를린 선언’에 대한 수용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북한은 햇볕정책․포용정책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는 비난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선택적으로 수용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포용정책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구상을 2000년 3월 9일 베를린 선언을 통해서 밝혔다. 베를린 선언은 ① 남북경협과 대북 경제지원, ② 냉전종식과 평화정착, ③ 이산가족상봉, ④ 남북한 당국간 대화 등을 강조하고, 2년 전 취임사에서 제의했던 특사교환을 북측이 수락할 것을 촉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미, 북-일관계 개선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남북한 당사자간 대화를 통해서 현안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베를린 선언을 했던 것이다.

베를린 선언 이후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해옴에 따라 수차례 비공개 접촉을 거쳐 4월 8일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일관성 있는 대북포용정책(햇볕정책)이 남북한당국간의 신뢰회복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정상회담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나. 미국.일본에 대한 압박카드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북한은 남한당국을 배제하면서 미국, 일본 등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해왔다. 특히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생존의 중심고리로 삼아 체제보장과 경제난 해결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광명성 1호)’ 미사일 발사와 금창리 지하 핵의혹시설 그리고 미국 공화당의 대북 강경노선 등으로 북-미관계 진전 속도는 늦어지게 되었다. 한편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빌미로 실종 일본인문제를 거론하면서 북-일관계 정상화보다는 미․일 방위체제 강화 등 군사력 강화에 주력했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따라 북한은 북-미, 북-일관계 개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인식을 하게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중심의 북한 지도부는 그들의 권력이 어느 정도 공고화됐다는 판단 아래 김일성 주석 사망 직전에 추진했던 서방과의 ‘대타협’ 노선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방과의 대타협을 위해서는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2000년 4월부터 시작된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과 곧 있을 북-미 고위급회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 경제위기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

북한당국은 그들이 처한 심각한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하고 대남정책의 전략적 수정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공식승계 이후 김정일 정권이 추진했던 ‘제2의 천리마 대진군’ 등을 통한 경제난 해소 전략도 내부자원의 고갈과 홍수․가뭄 등 자연재해의 지속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지원도 점차 한계에 달하고 있고, 분배의 투명성 문제 등으로 지원단체들과 갈등을 빚었다. 특히 2000년도 상반기에는 가뭄이 계속되어 전력생산과 곡물생산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경제위기에 봉착한 북한당국은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남한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현실인식을 하게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당국은 기존의 남한당국 배제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여 정상회담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라. 유훈관철과 통일지도자상 부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제의를 수용한 것은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 관철과 통일지도자상 부각이란 의미에서 볼 수도 있다. 미국 대신 주적으로 부각된 남한의 최고당국자와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국내적으로 군부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 북한의 군부를 비롯한 모든 주민들이 지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김정일은 정치적 부담을 가질 필요가 적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한 내부 논리는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민족대단결론’에 입각한 것이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 첫 통일관련 공식문헌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1997년 8월 4일)에서 “우리는 민족적 량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상과 신앙을 가졌건 또 그가 자본가이건 군장성이건 집권상층에 있건 관계하지 않고 함께 손잡고 나갈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북한의 내적 논리는 ‘남조선 집권상층과의 민족대단결론’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자 할 것이다. 남북한 공히 통일문제는 민족의 숙원사업이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슈는 통일문제이다. 따라서 1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조국통일의 구성’ ‘민족의 태양’‘통일대통령’ 등의 통일지도자로 부각시키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력 강화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조건과 고려사항

1차 정상회담에 응한 북한의 의도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의 상황과 조건이 맞아야 한다. 어느 한 측의 요구만으로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과 고려사상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 남북당국간 신뢰회복 문제

1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김대중 정부의 일관된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의 추진으로 남북한간에 신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핵문제란 숙제를 안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북한 핵개발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북핵해결에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평화번영정책’을 통한 남북화해를 가속화하지 못하고 북핵문제의 조기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에 주력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2003년 5월 15일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노력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추가적 조치의 검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핵문제와 남북교류협력을 ‘조건부로 연계’시킴으로써 대북 압박의 수위를 한 단계 높였다. 참여정부는 집권 이후 현재까지 미국, 일본 등과 함께 ‘대화와 압력의 병행전략에 의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마련하고 국제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8월 3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무산되면서 남북관계는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문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긴장조성 문제, 탈북자 468명의 입국문제, 남한의 핵과학실험 등을 둘러싼 남북간의 갈등과 11월 2일 치러진 미국 대선이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들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북핵문제 등으로 국제적 고립이 가중되는 시점에서 남북대화의 문마저 닫아버린 것은 미국 하원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직후에 있은 탈북자의 한국입국을 북한체제 붕괴를 위한 ‘평화적 이행전략’으로 인식하고,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오지 않은 것은 체제전복과 관련한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과 대규모 탈북자 입국을 체제붕괴의 전조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의 ‘북핵해결 우선주의’에 입각한 대북 압박과 7월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남북관계는 교착국면에 빠졌다. 따라서 남북 당국간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북한의 체제위기 심화와 국제적 고립 등을 고려해 볼 때 남북관계의 냉각기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당국간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려면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11월 13일 로스앤젤레스(LA) 국제문제협의회(WAC) 연설에서 핵개발과 관련한 북한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한 것은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와 함께 남북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간 신뢰가 회복돼야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나아가 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란 점이 고려됐을 것이다.

최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당국자가 각종 발언과 조치를 통해 유화적인 대북 메시지를 잇달아 던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노 대통령의 미국 LA 발언과 함께, 외교안보 관계 장관들은 잇달아 주적론이 시대착오적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에 추가지원 비료 10만t을 보냈고, 관광 비수기를 맞아 '통일교육 활성화' 차원에서 학생과 교사에 대한 금강산관광 경비지원방침을 밝혔다. 북한 역시 화답이라도 하듯 11월 19일 이산가족 면회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을 제의해와 일부에서는 적십자회담이 당국간 회담 재개로 연결되면서 정상회담을 기대 해볼만한 것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년의 광복 60주년과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5주년 행사와 핵문제 해결을 위한 기반 조성 등을 근거로 대북 특사 파견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나. 경협활성화와 대북지원문제

참여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대북정책의 제1의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핵문제 해결과 남북경협 확대를 사실상 연계시켰다. 북핵문제가 조기에 타결되지 않고 북미관계가 악화되는 속에서 이러한 ‘정경연계’는 한국 정부가 남북경협에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게 만든 주원인이 되었다. 결국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에서 합의하였던 3대 경협사업(금강산관광사업, 철도․도로연결사업, 개성공단사업) 외에 추가적인 협력사업을 발굴하지 못하였고, 기존의 합의사항과 협력사업을 유지.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북미관계 악화는 남북경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핵문제 해결 이전에 남북한간의 대규모 경제협력사업 추진 및 대북 지원사업 확대에 대해 거부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로 인해 전력.교통.통신 등 북한 내 SOC 건설사업, 경제발전자금 지원 등을 한국 정부가 추진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의 베를린선언이 남북정상회담의 ‘유인’ 작용을 했듯이 노무현 대통령도 올해 6월,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서 '북핵 문제 해결시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의 요구로 남북교류협력기금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북한이 바라는 대규모 대북 지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나올 수 있는 ‘유인’은 남북경협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 김정일 리더십 위기와 국면전환문제

북한은 2002년 10월 다시 불거진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계획과 관련한 북-미 갈등을 지속함으로써 2002년 하반기부터 추진해왔던 계획경제개선 조치(‘7.1조치’)와 대외관계 확장 등 정책변화를 본격화하지 못하고 ‘선군정치’를 통한 체제결속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핵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은 ‘주체사상을 구현한 선군사상’을 김정일시대 통치이데올로기(실천이데올기)로 제시하는 등 군사우선의 선군정치를 김정일시대 기본정치방식임을 강조하면서 군을 체제수호와 국가건설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은 대내적으로 선군정치를 통한 체제결속에 주력하면서 민족공조를 통한 전쟁 회피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은 ‘민족공조’를 내세우면서 미국으로부터 오는 전쟁의 위협을 남한을 방패로 삼아 막아보려는 듯 ‘우리 민족끼리 이념’ 등을 강조하면서 핵문제로 불거진 위기를 ‘조선 민족 대 미국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려 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은 무엇보다 핵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국가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데, 북한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장기 생존하느냐, 아니면 핵문제로 북-미 갈등을 지속하면서 체제위기가 심화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북한이 미대선 이후 2기 부시행정부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경우, 군사우선의 선군정치를 뒤로하고 경제우선의 개혁.개방 조치를 본격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핵문제 해결과 함께 미국, 일본 등 서방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북한은 ‘불량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지도부가 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체제위기가 지속될 경우 북한주민들은 김정일정권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게될 것이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고난의 행군’을 지속해왔던 북한주민들은 몹시 지쳐있다. 반복된 희생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북한주민들은 좌절하게 될 것이다. 2002년 하반기부터 추진해왔던 계획경제관리개선 조치(‘7.1 조치’)와 대외관계 확장 등의 정책변화 노선이 핵문제 등으로 실패로 돌아갈 경우 북한주민들은 김정일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북-미 갈등의 지속과 체제위기 심화 등에 따른 김정일 정권의 리더십 위기가 올 경우 북한지도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이를 리더십 확보와 위기국면 전환용으로 삼을 것이다.

1차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가 ‘성공’이다란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2차 정상회담은 성과가 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노력을 통해서 ‘통일지도자상’을 부각하고, 경제지원을 얻어내는 등 리더십 강화와 경제적 실리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 서야 할 것이다.

라. 한반도 평화관련 합의문제

핵문제로 북-미 갈등이 심화되고 전쟁위험이 높아지면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에 나와 한반도 평화관련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할 것이다. 남북간에는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서 ‘불가침합의’를 만들었지만 기본합의서를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사문화’되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빠진 데 대한 남한내 일각의 비판여론을 의식하여 북한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격을 ‘평화회담’으로 규정하고 평화합의를 대가로 한 대량의 경제지원 등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부가 제2차 정상회담의 성격을 ‘평화회담’으로 미리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남북 평화선언과 평화협정은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 당국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확보하자는 취지의 ‘한반도 평화선언’은 그야말로 남북한 당국자들간의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선언적 약속이다. 그러나 남북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동안 반세기 이상 지속해왔던 분단체제,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체제(peace regime)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전체제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레짐(regime) 수준의 현상타파정책이다. 평화체제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뿐만 아니라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보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평화선언과 평화협정은
명백히 구분해서 개념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임동원 전통일부장관이 밝힌 것처럼 “평화선언은 군사신뢰구축 등의 프로세스가 시작된다는 가벼운 뜻이다.” 평화선언은 남과 북이 상대방을 침략하지 않으며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으로,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합의를 재확인하는 ‘소극적 평화’ 선언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종점단계, 즉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구상의 마지막 단계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적극적 평화’를 확보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정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 그리고 남한에서의 유엔군사령부와 미군 주둔 및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할 때 남북 평화협정 채결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당연한 것이다.

북한이 기존의 입장을 바꿔 남북 평화협정을 전격적으로 수용한 이후 주한미군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남북 평화협정(평화합의서)을 제안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과거 미군철수의 전제조건 차원에서 남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한 바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1974년 2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기 전까지 남북 평화협정 체결 주장(1955. 8.-1974. 2.)을 한 바 있다. 당시까지는 ‘평화’(한국전쟁의 전후처리)와 ‘불가침’은 미분화 상태에 있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빠진 데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격을 미리 ‘평화회담’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은 남북한 공히 긴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더욱 필요한 쪽은 오히려 북한이란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경제난의 가중 등 체제위기의 심화로 정권과 체제유지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남쪽의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연합전력)으로부터 받는 위협감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다.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를 우리가 성급하게 들고 나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야당이나 여론의 비판을 의식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격을 미리 ‘평화회담’으로 규정하고 나설 경우 대북 협상력이 떨어질 것이다. 북쪽이 이를 역으로 활용하여 평화합의를 대가로 한 대량의 경제지원 등을 요구할 것이다.

또한 남북간의 평화논의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3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미국의 태도는 한반도문제의 당사자해결구도에 의한 미국의 영향력 축소에 대한 우려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미국은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대화와 압력의 병행원칙’에 따라 대화는 하되 양자대화를 거부하고 다자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PSI) 구상을 통해서 미사일, 마약수출 저지 등 해상봉쇄 추진과 북한인권법안 발효를 통해서 내부 민주화․자유화를 추진하는 미국이 대북 압력의 수위를 높이는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미국의 대북 압박효과가 떨어지는 데 대해서 미국은 ‘내심’ 우려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핵문제 해결의 큰 가닥을 잡은 이후 6.15 공동선언의 이행과 남북간 현안문제 전반을 논의하는 회담으로,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 의미를 부여하면서 남북공동선언 형태의 합의문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Ⅳ. 2차 정상회담 시기와 장소 및 고려사항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은 그가 “5대 공동선언의 실천 과정을 보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 등으로 미뤄볼 때 6․15 공동선언의 실천문제와 연계하여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답방시기는 경의선 연결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 속도와 깊은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열차편을 이용한 장기간의 러시아 방문에서 확인했듯이 김 위원장은 항공기 이용을 피하고 있다. 그렇다면 육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판문점은 유엔사 관할지역이라 이 지역의 통과를 피할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은 철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열차를 이용하려면 경의선이 연결돼야 한다는 추론에 근거할 때 김 위원장의 답방시기는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경의선 철도의 연결과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경의선 연결 이후 김 위원장은 이른바 ‘통일열차’를 타고 서울을 방문함으로써 ‘통일지도자상’을 부각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북한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카드화해서 북한의 경제위기 해소 및 핵위기 해소를 주 변수로 두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상관성 속에서 그 시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과 함께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차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의 기본 틀을 마련하고, 철도․도로 연결과 함께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이 이뤄지면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서울 답방이 어려울 경우 ‘금강산 관광특구’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금강산지역은 남북이 공유한 땅으로, 남북화해의 상징성이 높은 지역이다. 새로 개축한 금강산호텔이 남북 정상회담 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2차 정상회담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평화선언 또는 평화협정 같은 한반도문제의 구조변화를 수반하는 합의를 서두르기보다 6.15 공동선언의 이행 평가와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과 관련한 몇 가지 합의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2차 북핵위기로 한반도문제가 다시 국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평가하고 핵문제 등 한반도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한반도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차 정상회담의 의제는 6․15 공동선언 이행 평가,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재확인,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관련 논의, 당국간 대화의 제도화와 교류협력 활성화,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구도(민족공조) 정착 등이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2차 정상회담에서의 한반도 평화선언 또는 평화협정 추진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남북정상 이후 급격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이에 따른 주한미군의 위상변화 등 한반도 구조변화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만 개최여건과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남북당국간 신뢰회복이 중요하다. 중단된 남북장관급회담의 재개를 통해서 남북당국간 신뢰를 회복하고 6자회담에서 북핵해결의 큰 틀을 잡을 때쯤 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도록 사전 준비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2차 정상회담의 의제로 한반도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체결 등 한반도 기존질서의 변경을 가져올 합의는 현상유지를 바라는 미국과 마찰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김대중 정부 시기 남북 평화협정 추진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견제로 2차 정상회담 개최자체가 성사되지 못한 것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떻든 지금 한반도에서는 현상유지세력과 현상타파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분명 남북정상회담은 정전협정에 기초한 냉전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평화질서를 창출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현상을 타파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국내외의 현상유지세력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모험을 하지 않고 우리 운명을 주변 4강등에 맡길 경우 현상유지를 지속하거나 우리 의지와 관계없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될 지도 모른다.

남북간의 첫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통일로 가는 마스터플랜은 마련되었다. 앞으로는 합의 이후 실천과정상에 나타날 수 있는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 합의 후 불이행’으로 점철해왔던 과거의 악습을 버리고 합의사항을 잘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1972년 7.4공동성명, 1992년 기본합의서는 발효 이후 해석상의 이견 노출과 이행 의지의 미흡으로 사문화된 바 있다. 이를 교훈으로 삼아 남북한당국은 합의사항을 반드시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6.15 공동선언을 실천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서로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적대적 대립관계를 지속해왔다. 냉전시대 남북한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도 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에는 여전히 냉전의 ‘관성’이 남아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타도의 대상이 아닌 공존.공영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는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을 겪는 것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북 화해협력, 공존공영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냉전적 인식구조를 탈냉전 인식구조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고 유 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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