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생의 바다로 나아가는 대만해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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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선 중국을 보면 숙원인 대만 문제 해결을 위해 긴 호흡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혁개방 30년을 통해 ‘G2(미국과 중국)’로 부상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만을 중국 중심의 중화경제권으로 차근차근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구 14억 명, 국내총생산(GDP) 5조3000억 달러의 거대 시장을 형성해 차이완(China+Taiwan=Chiwan)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이다. 이 같은 대의(大義)를 위해 중국은 대만에 적지 않은 양보를 했다. 대만이 우려하는 중국 노동자의 대만 취업을 불허하고, 또 중국 농산물은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처럼 배려가 선행된 경제적 통합을 발판으로 중국은 궁극적인 통일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양안 관계가 그동안 경제적인 상호의존 관계의 심화에 따라 정치·군사적 긴장이 점차 완화돼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만 문제를 국가적·민족적 통일 차원의 ‘신성한’ 과제로 다뤄야 하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입장에선 눈앞의 실익보다는 장기적·총체적 이익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천수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시달려온 과거를 감안할 때 이번 ECFA 체결은 더욱 소중하고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이번 경제협력기본협정 체결은 대만의 정책 변화에 기인한 점이 더 크고 또 중요하다. 대만이 기존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협정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은 첫째, 대륙지향적인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정부의 등장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잉주는 2008년 3월 대선 당시 대만 경제가 장기간의 침체 국면에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륙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밖에 없다는 점을 역설해 왔다. 그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하나의 중국 시장(One China Market)’ 건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둘째, 대만 정부가 이번 협정 체결에 과감하게 나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 2000년 민진당 정부 집권 이후 8년 동안 실익 없는 대만 독립 주장에 식상한 많은 대만인이 마잉주에게 대폭적으로 힘을 실어준 점을 꼽을 수 있다. 대만의 현재 최고 관심사는 통일이냐, 독립이냐의 통독(統獨) 논쟁이 아니다. 그보다는 ‘누가 어떻게 대만 경제를 회생시키느냐’다. 마잉주는 이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벤치마킹했다. 이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기간에 내세운 ‘7·4·7 정책(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본떠 마잉주는 ‘6·3·3 정책(경제성장률 6%, 국민소득 3만 달러, 실업률 3%)’을 표방했다. ECFA는 결국 마잉주의 친대륙적 경제정책을 대만인들이 지지한 결과다.

이처럼 협정 체결엔 중국과 대만의 이해득실에 대한 치밀하고도 전략적인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물론 협정 체결로 양안이 해묵은 갈등을 일시에 해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얻는 건 아니다. 대만의 경우 입법원 비준이라는 또 한 차례 넘어야 할 관문이 도사리고 있다. ‘대만 경제가 중국에 흡수돼 주권 유지가 어렵다’는 민진당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번 협정이 양안의 화해와 협력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란 점이다.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 (양안의) 백성들(民以食爲天)’이 이제 먹을 것을 갖고 함께 협력하게 된 이상 더 이상의 분열은 어렵기 때문이다. 대만해협은 이제 적대적 이념이 넘실대는 갈등의 바다가 아니다. 양안의 상생과 공영을 노 젓는 평화의 바다로 진화하고 있다.

문흥호 한양대 교수·중국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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