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訪北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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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근혜 의원의 방북은 의문투성이다. 결정적 의문은 정부 도움 없이 가능한가다. 상식적으론 불가능하다. 시기도 묘하다.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다. 선거가 코앞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배경을 놓고 갖가지 억측이 돈다.

하나는 영남표 잠식론이다. 이회창 지지표 분산의 논리다. 그러자면 박근혜의 독자 출마가 필요하다. 경북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경남 출신 노무현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의 방북을 도와주었다는 얘기다. 주로 한나라당 쪽에서 도는 소문이다.

또 하나의 억측은 제2 대안론이다. 후보의 지지율 하락과 관련있다는 것이다. 원조 영남후보론의 회생이다. 민주당 비주류 쪽에서 도는 소리다.

그러나 억측은 억측일 뿐이다. 박의원의 방북경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다. 본인은 유럽연합 한국재단이 주선했다고 했다. 그러나 진짜 배경은 딴 데 있다. 실은 김정일이 만나길 강력히 원했다. 한두 번 의사표시를 한 게 아니었다. 우리측 고위 인사를 만날 때마다 박근혜 얘기를 했다. 정부로선 그걸 공개할 수 없었다.

시기·배경 싸고 구구한 억측

지난 2000년이다. 박의원은 남북 정상회담 때 동행키로 돼있었다. 그것도 북한측의 사전요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산됐다. 김정일은 DJ를 만나자 그 얘기를 했다.

"박근혜 의원은 왜 안왔습네까. 이회창 총재가 왜 막았는지 이해 못하겠습네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다. 만찬석상의 김정일은 옆자리의 우리측 방송사 사장에게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의원 잘지내고 있습네까. 한번 만나보고 싶습네다."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갔을 때도 같은 얘기를 했다. 가장 최근에 방북한 임동원 특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정부로선 어쩔 수가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지난 13일 밤이었다. 박의원을 만난 김정일은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일"화해 원했다"…그게 다일까

"그렇게 여러 경로로 보고싶다고 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유럽-코리아재단이 연결시켜 주었습네다."

문제는 김정일이 왜 박근혜를 보고자 했는가다. 박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하게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이유를 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오래 전 우리측 인사를 만났을 때 그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김윤환씨가 정부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전해준 말이다.

"냉전시대 북남지도자의 아들과 딸로서 화해를 하고 싶습네다."

실제로 김정일은 박의원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고통스런 일을 겪은 것을 안됐다 생각합네다." 박근혜가 전한 김정일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은 왜 화해를 원했을까. 절대권력자의 치기일까. 대통령선거를 앞둔 고도의 전술인가. 김정일은 박근혜 신당의 창당이념도 물어봤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박근혜가 답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엉뚱하게 반응했다.

"거기 여야는 너무 많이 싸우더라구요."

김정일은 아주 솔직했다 한다. 별다른 복선도 없었다. 그렇다고 화해가 전부였을까. 그랬다면 순서가 잘못됐다. 남과 북의 화해가 먼저다. 두 사람의 화해는 그속에서 이뤄질 문제다. 그렇지 않다면 진정한 화해일 수 없다. 결국 계산이 있는 거다. 박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만난 거다. 그것을 입다물고 지켜보는 우리 정부의 계산은 무엇일까. 없었다면 말이 안된다.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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