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단서도 못 잡고 1주일 … ‘장안동 사건’ 장기화 조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서울 장안동의 아동 성폭행 사건이 발생 6일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경찰은 아직 용의자가 누구인지도 특정하지 못한 상태다. 사건 현장에서 나온 단서들에 대한 감식에서도 특별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사건이 장기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동대문경찰서는 사건 발생 후 현장 주변의 방범용 폐쇄회로TV(CCTV) 16대의 녹화 기록을 확보해 검색했다. 피해 아동 A양(7)이 진술한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인물이 찍혀 있는지를 살폈지만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CCTV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검은색 점으로 나와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범용 CCTV가 일부 설치돼 있으나 방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동대문구에는 149개의 CCTV가 설치돼 있다. 500대 이상 설치한 강남구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피해 아동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CCTV도 한 블록 이상 떨어진 놀이터에 한 대가 있을 뿐이다. 용의자가 놀이터를 피해 다른 방향으로 도주했을 경우 CCTV에 찍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CCTV 설치 예산을 관리하는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예산이 없어 한꺼번에 많은 CCTV를 설치할 수 없다”며 “주민들의 민원이 꾸준히 들어오지만 매년 20~50대씩만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 감식에서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도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용의자가 집안 곳곳을 뒤져 금반지 3개와 아이의 지갑에서 베트남 지폐로 4만동(약 2000원)을 가져갔지만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 침대 시트에서 발견된 정액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너무 훼손돼 정액인지 여부도 확정할 수 없는 상태다. 현재 감식 결과 나온 유일한 단서는 (피해자의 가족이 아닌) 제3자의 것으로 나온 체모 1점만 확보돼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사건 초기 현장 보존과 감식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피해 아동이 용의자가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고 진술함에 따라 추적에 나섰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답십리 쪽에만 가더라도 배달용 오토바이가 일일이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배달하는 사람들이 한참 바쁠 낮 시간대에 오토바이를 타고 온 점을 보면 훔쳐서 탔을 가능성도 있어 단서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30일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제보를 한 시민에게 주는 포상금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렸다.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담은 수배 전단 1만6000장을 서울 지역 경찰서 등을 중심으로 배포했다. 용의자가 지방으로 도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5만 장을 인쇄해 전국에 추가 배포했다. 하지만 아직 신빙성 있는 제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용의자가 잡히지 않자 범행 현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이 동네 주민 임모(41)씨는 “아이 혼자 놀이터도 못 가게 하고 있다”며 “범행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다 돼 가는데 어떻게 경찰은 용의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느냐”고 말했다.

김효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