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대만 회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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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베이징(北京) 충원(崇文)구 다장(大江) 114호. 이곳에 대만(臺灣) 회관이 있다. 1896년 섰다. 중국 유일의 대만 문화관이다. 전신은 쉬안우원와이(宣武門外) 허우톄창(後鐵廠) 20호의 전대(全臺) 회관이다. 시작은 강희(康熙) 24년(1685년)이다. 이때 대만에 대륙식 과거 제도가 도입된다. 대만 인재가 중앙으로 진출한다. 1893년 대만 수험생을 보살피기 위한 숙사가 허우톄창에 들어선 이유다.

역사는 기구했다. 민국(民國) 시절, 상가로 임대된다. 수익금은 ‘대만여평동향(旅平同鄕)회’, 즉 대만여행협회의 활동자금으로 쓰인다. 1949년 민가가 된다. 그해 장제스(蔣介石)가 대만으로 퇴각하고, 대륙엔 공산 중국이 섰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시 대만회관이 된 건 1993년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만 기념관이 된다. 1996년 100주년 행사를 열었다.

옛날 건물이니 회관은 협소했다. 교통도 불편하다. 시설도 낡았다. 날로 늘어가는 양안(兩岸) 교류를 소화하기엔 턱도 없다. 때마침 2005년 충원구청이 천안문(天安門) 뒤 첸먼(前門) 지역을 보수한다. 그 덕에 대만회관도 일신한다. 2009년 6월 24일 운간(雲間)회관, 복덕선림(福德禪林)이 더해지고, 아름다운 사합원을 거느린 새 회관이 탄생한다. 면적도 1300㎡(400평)에서 1만2500㎡(3800평)로 늘었다.

규모보다 중요한 건 색채다. 대만풍이 물씬 풍긴다. 문은 대만 특색의 마조묘(<5ABD>祖廟)다. 회관 안으로 들어서면 대만 토속곡 ‘아리산 구냥’(阿里山姑娘)이 흘러나온다. 맑은 물 흐르는 석판, 대들보에 걸린 홍등, 정교한 헝겊 인형, 빛나는 유정석(流晶石)…, 베이징과 대만의 맛을 절묘하게 버무린 디자인이다. 건물 밖엔 대만 루강(鹿港)의 옛 거리가 화폭으로 걸렸다. 절로 대만이다.

양안관계도 남북관계 못지않게 부침이 심했다.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취임 후 8년간은 최악이었다. 그래도 대만회관은 건재했다. 실용이 이념을 누른 결과다. 그 열매가 ‘차이완 시대’다. 양안끼리 무관세 혜택을 주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즉 양안 FTA가 29일 출범했다. 중국이 대만 경제를 품었다. 양안 모두 행복이다.

우린 어떤가. 한쪽은 보복이요 징계고, 또 한쪽은 전면전 으름장이다. 다툼은 그렇다 치자. 그래도 대만회관 같은, ‘북한회관’ 하나쯤은 두자. 그래야 희망을 걸 수 있다.

진세근 탐사 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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