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인구 40% 700원으로 하루 살아 "그래도 애들 교육은 시켜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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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낯선 이방인 기자를 맞아 수줍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필리메나 수나리스(45·여)의 주름진 얼굴은 족히 예순살은 돼 보였다. 수나리스는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 중심가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인 비자우 마사우 마을에 살고 있다. 야자수가 우거진 전형적인 열대 농촌이지만 토양이 거칠어 시장에 내다팔기에 마땅한 작물 하나 없다.

네살배기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일곱 남매를 두고 있는 수나리스 부부는 일정한 수입원이 없다. 닭 대여섯마리를 풀어 키우는 게 고작이다.그나마 야생 커피를 캐는 일이 유일하게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길이다. 동부의 로스팔로스나 서부 산악지대의 커피 산지에서 사흘 정도 일하면 많게는 하루 1백달러까지 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를 찾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수나리스에게 연간 수입과 하루 생활비를 묻는 것부터가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마땅한 수입원이 없으니 지출을 억제하는 것 말고는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다.

"일곱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나면 우리 부부는 늘 허기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애들이라도 배불리 먹였으면…."

7명이 옷 물려가며 입어

10평 남짓한 땅에 벽돌을 쌓아 보금자리를 꾸민 수나리스 부부에게 가재도구라곤 낡은 침상과 플라스틱 의자 몇개, 녹슬고 찌그러진 취사 도구가 전부다. 설령 돈이 있다 한들 이들에겐 TV나 냉장고 따위의 가전제품은 '그림의 떡'이다. 전기가 없기 때문이다.

일년에 예닐곱벌의 옷을 사면 일곱 자녀들이 닳아헤질 때까지 돌려가며, 물려가며 입고 또 입는다. 신발을 신는 건 이들에게 사치다. 3㎞ 떨어진 학교에 갈 때도 모두 맨발이다.

변변한 교통 수단이 없는 동티모르 국민에게 10㎞쯤의 거리를 걷는 건 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꿈을 꾸는 게 가능할까.

"이제 우리 부부 모두 늙었으니 어서 애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갖는 게 소원이다."

평균 수명이 57세인 동티모르에서 마흔 중반의 수나리스는 벌써 노인 대접을 받는다.

이웃에 사는 도밍가스 베리호노(여)는 서른 나이에 이미 열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 가운데 네명은 어릴 적 병으로 숨졌다.

"네 아이 모두 갓난아기 때 티푸스에 걸렸다.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보건소에 갔다가 변변한 치료도 못받고 죽었다." 막내에게 젖을 물린 채 슬픈 가족사를 들려주는 도밍가스의 표정은 듣는 기자보다 오히려 더 담담했다.

이 마을에서 도밍가스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목수 일을 하는 남편이 장롱이며 의자·책상 등을 짜서 한달에 1백달러 정도를 벌어오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도밍가스는 마을에선 유일하게 낡은 싱가포르제 라디오를 갖고 있다.

가난에 찌들 대로 찌든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은 자녀 교육이다. 한달에 5달러씩 들어가는 중학교 학비가 부담스럽지만 무리해서라도 꼭 보낸다.

뒤늦게 입학해 이제 마리오 중학교 1학년인 열여섯살 다실바는 "대학까지 마친 뒤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거친 토양 농사 못지어

하지만 다실바에겐 교과서도 없다. 학습 도구라곤 공책 세권과 필기 도구가 전부다. 멋모르고 "학교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느냐"고 물어 다실바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동티모르의 1인당 소득은 4백78달러(62만원). 국민 74만명 가운데 40%가 하루 생활비 55센트(약 7백20원) 이하로 살아가는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전력보급률은 20% 수준이며, 전화는 1천명당 8대꼴로 보급돼 있다. 변변한 산업시설은 전무한 상태며, 미국의 세계적인 커피체인업체인 '스타벅스'에 공급하는 야생 커피가 유일한 외화 수입원이다. 2004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갈 티모르해의 석유가 동티모르 국민의 희망으로 남아 있다.

딜리(동티모르)=예영준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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