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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러 합의한 核무기 감축 협정이 뭔가요? 당장 쏠 수 있는 핵탄두 확 줄인답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 최근 신문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핵탄두를 3분의2씩 줄이기로 합의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두 나라는 과연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이 중에서 얼마를 줄이는 건가요.

핵무기는 크게 전략(strategic)용과 전술(tactical)용 두 종류가 있어요.전략핵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키워드 참조)처럼 멀리 떨어진 상대방의 영토를 공격할 수 있는 큰 핵무기를 말합니다.전술핵은 일정한 전투지역에서 사용하는 작은 핵무기이지요.

미국은 현재 미사일·잠수함·폭격기 등에 약 6천기의 전략 핵탄두(nuclear warhead)와 1천기의 전술 핵탄두를 실어놓고 있어요. 언제든 발사할 수 있다는 뜻에서 '배치(deployed) 탄두' 라고도 하지요. 미국은 또 무기고에 보관해둔 '저장탄두'가 전략·전술핵을 합쳐 모두 5천기나 된답니다.

러시아는 배치 중인 전략·전술 핵탄두가 각각 5천5백기와 4천기예요.그리고 저장탄두는 총 1만3천기입니다.

두 나라는 이번에 '배치' 중인 전략핵만 줄이기로 했어요. 10년 뒤인 2012년에 각자 1천7백~2천2백기까지만 남기자는 거지요.

2. 그렇다면 미·러가 각각 3천8백기·3천3백기를 줄이는 셈인데 핵무기를 짧은 기간에 그렇게 많이 없앨 수 있나요. 많은 돈을 들여 만든 비싼 무기인데 슬그머니 감춰뒀다가 나중에 쓰지는 않을까요.

두 나라가 얘기하는 감축이란 미사일 등 발사체에서 탄두를 떼어내는 것이에요. 문제는 이렇게 분리한 탄두를 처리하는 방법이지요.

보통 ▶해체·폐기하거나▶지하 격납고 등 깊은 곳에 보관하거나▶가까운 곳에 두어 언제든지 장착할 수 있는 '예비탄두'로 쓰는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두 나라는 각자 알아서 하기로 했어요.분리하는 숫자만 맞추자는 거지요.

미국은 앞으로 러시아가 다시 적대적으로 되거나 아니면 큰 경쟁자로 생각하는 중국의 핵무장이 늘어나면 언제든 다시 장착할 수 있도록 분리된 탄두 중 상당수를 보관할 생각이에요. 최소 2천4백기를 '예비탄두'로 둔다는 거지요.

사실 러시아는 협상과정에서 "떼어낸 탄두 전부를 폐기하자"고 미국에 요구했어요. 핵무기는 아주 위험한 무기라 보관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드니까 경제가 어려운 러시아로선 차라리 없애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러나 미국이 보관하겠다고 고집하자 러시아도 이제는 적잖은 '예비탄두'로 두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고 있어요.

3. 줄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군요. 분리된 탄두를 거의 다 보관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1945년 미국이 떨어뜨린 작은 핵폭탄 하나로 히로시마라는 일본 도시가 폐허가 됐는데 그보다 훨씬 강력한 핵폭탄이 수천기씩 남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지 않은가요.

맞는 말이지만 너무 어둡게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없어지는 탄두도 많을 테니까요. 미국은 당장 핵탄두를 싣고 있는 '피스키퍼(평화지킴이)'라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50개를 없애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트라이던트(삼지창)'라는 핵공격 잠수함 4대도 퇴역시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실린 탄두들은 폐기될 가능성이 커요.

이렇게 보면 당장 발사할 수 있는 핵탄두가 주는 만큼 인류의 불안감도 줄어들 겁니다.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번 감축 합의가 박수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4. 그러면 핵무기가 당장 줄어들게 되나요. 미국과 러시아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발사 가능한 핵탄두를 다시 크게 늘릴 수 있는 건 아닌가요.

사실 매년 얼마씩 줄여야 한다는 의무는 없어요. 당장 올해부터 줄이든지, 아니면 여러 상황을 보다가 2012년이 다가올 때 급히 줄이든지 목표량만 맞추면 됩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세계가 쳐다보는 눈을 의식해서라도 일정한 속도로 조금씩 줄여나갈 겁니다. 두 나라는 서로 감축량을 감시하는 기구도 곧 만들 작정이에요.

그러나 두 나라는 자신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바로 협정을 취소할 수 있어요. 3개월 전에만 상대방에 통보하면 되지요. 그리고 2012년이 되면 이 협정은 끝나요. 그때 가서 두 나라는 마음 먹은 대로 핵무기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됩니다.

5. 두 나라는 과거에도 핵무기를 줄이는 협정을 많이 만들었잖아요.이번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미국과 옛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치열하게 핵무기 경쟁을 했지요. 그러다가 72년 ICBM 등의 생산을 중지하자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키워드 참조)'을 체결했어요. 두 나라는 79년 'SALT Ⅱ'를 만들었지만 미국 의회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이를 비준하지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진전은 91년에 마련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I·키워드 참조)'이에요. 영어로 'start'는 '출발'이라는 뜻이잖아요. 이 협정을 통해 두 나라는 핵무기를 단순히 '제한'하는 것에서 적극적으로 '감축'하는 쪽으로 한발 나아가게 됐답니다.

6. 미국과 러시아말고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이런 감축협정에 해당이 안되나요.

영국 BBC 방송의 자료(2000년 5월 기준)에 따르면 5대 핵강국 중 미·러를 빼고 영국은 4백여기,프랑스는 5백10여기, 중국은 4백25기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이밖에 인도와 파키스탄도 각각 60~2백50기, 10~1백50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답니다. 이스라엘 역시 1백여기를 지닌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이란·이라크는 핵무기를 개발해온 것으로 보이지만 핵탄두를 가졌다는 증거는 아직 없어요.

이처럼 다른 나라들의 핵탄두는 미·러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일단 두 나라가 나서서 감축을 추진하는 거예요. 미·러가 대규모 핵감축에 합의한 것은 다른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무장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이 될 수도 있어요.

미·러 핵감축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보세요.

▶국방부 군비통제관실(www.mnd.go.kr/mnd/sub_home/html/sub_home4_index.html)

▶원자력포털사이트 누크(www.nuke.co.kr/energy/arms/index.html)

▶미 군축협회(www.armscontrol.org)

▶미 과학자연맹(www.fas.org)

▶미 핵과학교육재단(www.thebulle

tin.org)

▶영 국제전략문제연구소(www.iis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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