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수업'설 땅'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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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북 전주시 S초등학교는 전교생 1천8백여명을 1,3,5학년과 2,4,6학년 2개 조로 나누어 지난 13, 14일 완주군에 있는 한 수련원에서 하루씩 운동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이를 위해 1인당 1만3천5백원씩 냈다.

S초등학교가 '원정 운동회'를 연 것은 운동장에 강당 건물을 짓는 바람에 운동회를 할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이 학교는 매주 목요일 실시하는 운동장 조회도 실내 방송조회로 대체했다.

학급당 학생을 35명 이하로 줄이기 위한 교실 확보 등을 목적으로 일선 학교마다 운동장에 교실과 강당 등을 증축하는 공사를 벌여 학생들의 체육·활동 공간이 턱없이 좁아지고 있다. 정부의 교육여건 개선 사업이 오히려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열악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실태 및 문제점=16일 오후 서울 D고등학교 운동장은 공사장이나 다름없다. 컴퓨터실 등이 들어서는 2층짜리 교육정보관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로·세로 각 70m 정도 규모로 협소했던 운동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에 따라 체육수업이 파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생 朴모(16·고1)군은 "이 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 비좁아진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하는 체육 수업은 거의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울 G·D중학교 등 많은 학교들은 인근 학교 운동장에서 더부살이 체육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 T고등학교 金모(17·2년)군은 "운동장에 새 교실을 짓느라 50m 달리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는 운동회는 생각도 못한다. 광주 W초등학교는 지난 6일 광주시민공원에서 학교운동회를 치렀다. 40학급인 이 학교의 운동장에서는 전체 학생이 참가하는 운동회를 할 수 없어 시민공원 운동장을 빌린 것이다.

인근 다른 초등학교들도 사정이 마찬가지여서 공원 운동장 사용요청이 잇따르자 공원관리사무소측은 "학교 운동회 때문에 시민들이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며 내년부터는 학교에 임대하는 것을 금지할 계획이다. W초등학교 관계자는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운동회를 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학부모 朴모(39·전주시 송천동)씨는 "강당을 짓는다고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줄이는 게 교육여건 개선이냐"고 꼬집었다.

◇대책=전교조 김영삼 정책연구국장은 "학교 운동장을 줄여서라도 교실을 늘리겠다는 무리한 발상 때문에 체육공간이 줄어들고 있다"고 비판했다.한창 커가는 학생들의 체육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려면 같은 학교 내에서 무조건 교실을 늘리기보다 학교를 새로 지어 학급당 인원을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교실 등의 신축 공사로 일부 학교에서 운동장이 줄어드는 피해가 나타나고 있지만 이 경우 체육관 등을 지어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급당 인원 감축을 위해 2004년까지 모두 12조원을 들여 1천2백여교를 새로 짓고 1만6천여개 교실을 늘릴 계획이다.

장대석·천창환·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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