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제2부 薔薇戰爭 제4장 捲土重來 : 거지꼴로 돌아온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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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민애왕 원년 2월. 서력으로 838년.

청해진에 조운선 한 대가 정박하였다. 신라의 전통적인 두대박이 쌍돛대의 범선이었다. 산동반도에서 출발한 무역선이었는데, 중국에서 싣고 온 도자기들을 부두에 내리고 있는 동안 승객 하나가 배에서 내렸다. 보통 신라 무역선은 지붕을 이은 두세개의 선실이 있었으나 이 선실에는 보통 사신들이나 승려와 같은 높은 신분의 계급들이 타고 있었고, 일반승객들은 갑판 아래에서 머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유사시엔 뱃전 난간에 방패를 세우면 일종의 전투선 형태인 방패선이 되는 배에서 내린 승객은 매우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뭍에 내린 후 묵묵히 자신이 딛고 선 땅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얼마만의 고향 땅인가.

사내는 고향을 떠났던 햇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았다.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이 20세도 안된 청소년 때였고, 지금 그의 나이는 50세에 가까이 되었으니 3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멋진 신세계 당나라에서 청운의 꿈을 이루겠다고 도당한 것이 812년 무렵의 일. 올해가 838년이니 정확히 26년만에 고향 땅을 밟은 것이다.

그러나 청운의 꿈은 과연 이뤄졌는가.

떠날 때는 꿈에 부푼 청년이었으나 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는 초로의 방랑객.

사내는 눈을 들어 고향의 산야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격세지감이 있었다. 예부터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으나 10년이 벌써 두세차례 흘러가는 동안 뽕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되었으며, 산이 변하여 푸른 벌판이 되었음이었다.

그의 고향 청해에 진영이 설치된 것이 흥덕왕 3년 4월. 서력으로 828년이었으니 정확히 1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불과 10년 사이에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사내의 고향은 거대한 번진으로 탈바꿈하여 있었다.

사내가 물질을 하며 뛰어 놀던 조음도에는 엄청난 규모의 군영이 설치되어 있었고, 해안가였던 장좌리 일대에는 상가와 당나라와 일본, 멀리 대식국에서부터 몰려드는 각국의 상인들을 먹고 재울 수 있는 객관이 십리장가를 이루고 있었다. 장좌리 일대를 두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청해진에 상주하는 만명의 군사들의 군영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자못 군세가 성하게 보였다.

사내는 군영과 맞은편에 급속도로 뻗어나가고 있는 상가를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그로서는 한바탕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입신출세의 푸른 꿈을 안고 당나라로 들어가 한때는 무공을 세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높은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 내 꼬락서니는 무엇이란 말인가. 비단옷을 입고 성공하여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 꼬락서니야말로 완전히 거리를 떠도는 걸인의 모습이 아닐 것인가.

사내의 초라한 모습을 만당 최고의 시인 두목은 『번천문집』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무렵 그는 뒤엉켜서 관직에서 떨어졌으며,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두목의 표현대로 기한(飢寒)에 떨며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고향 청해는 눈부신 신기루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상가는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번화하였다. 지나는 행인들을 끌기 위해 북을 치고 나팔을 부는 취타(吹打)소리, 물건을 고르는 행인, 오가는 행인들을 유객하고 흥정하는 말다툼 소리. 사내는 우선 배가 고팠으므로 그 상가 속에 있는 육전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국밥 같은 간단한 음식과 술까지 곁들여 파는 육전 안도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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