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벼락'고교얄개 셋 좌충우돌 감칠 맛 '불발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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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한국 사회도 많이 가벼워졌나 보다. 일단 영화적으론 그렇다. 아직 '아메리칸 파이'류의 우왕좌왕 섹스 코미디는 선보이지 않았지만 요즘 나오는 청춘영화는 확실히 예전보다 경쾌해졌다. 남들의 시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일 뿐.

10일 개봉하는 '일단 뛰어'(감독 조의석·사진)의 분위기도 그렇다. 가정·학교로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순간을 즐기는 고교생들의 얘기다.

새차의 에어백 성능을 실험한다고 주차장 기둥에 돌진하는 성환(송승헌), 용돈을 구한다며 연상녀들과 서슴없이 하룻밤을 지내는 우섭(권상우), 개인 인터넷 방송으로 여자 친구에게 자신의 '생쇼'를 생중계하는 진원(김영준)의 모습은 보기에 따라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영화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지난 3월 개봉한 '정글쥬스'처럼 우연히 굴러들어온 돈다발을 둘러싼 좌충우돌 소동을 그리고 있다. 돈가방 쟁탈전이란 '고전적' 소재를 맛깔나게 조리하는 솜씨가 빈약한 느낌이다.

21억원이란 거금으로 멋진 인생을 살아보려는 고교생, 잃어버린 돈을 찾아 이들을 추적하는 얼치기 도둑 형제(이문식·정규수), 그리고 도둑 일당과 학생들의 뒤를 쫓는 정의파 형사 지형(이범수)이 빚어내는 한바탕 소극이 결코 정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 순간 폭소는 튀어나오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웃음은 찾기 어려운 것이다. 하기야 그게 연출 의도라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일단 뛰어'는 아기자기한 컴퓨터 그래픽도 시도했다. 꿈 속에서 개에게 발길질을 당한 초보 도둑(이문식)이 보름달에 박히고, 돈벼락에 겁을 먹은 진원의 눈엔 일식집 초밥이 자신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럼에도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처럼 감칠 맛을 주지 못하는 건 역시 사건만 나열하는 엉성한 구성 탓인 것 같다.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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