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클래식은 수백 년 전 음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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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05면

영화감독 박찬욱씨를 클래식 음악회에서 종종 마주칩니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 1악장, 칸타타를 골라 쓴 감각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런데 외국의 공연장에서는 마틴 스코세이즈 감독을 그렇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봅니다. 올 3월 그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가 음악 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이미 알려진 클래식 작품 대신 20세기 음악을 선택했죠. 영화도 음악도 서늘합니다. 가장 섬뜩한 것은 음악을 고른 안목입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이 OST에는 존 케이지(1912~92)의 ‘마르셀 뒤샹을 위한 음악’과 백남준(1932~2006)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가 함께 있습니다. 펜데레츠키(77)의 교향곡 3번, 리게티(1923~2006)의 ‘론타노’도 좋은 선곡이지만 케이지와 백남준의 ‘오마주 릴레이’야말로 놀랍죠.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악’이 오늘 상담실의 주제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말러(1860~1911)의 피아노 4중주 팬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과거와 현실의 교차 장면에서 나오죠. 그 스산함이 일품입니다. 16세 말러의 작품인데, 곡 전체를 완성하지 못해 일부만 남게 된 스케치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매료된 사람이 또 있었으니 러시아의 알프레드 슈니트케(1934~98)입니다. 말러의 피아노 4중주에 영감을 받아 비슷한 길이(10분)의 피아노 4중주(1988년)를 만들었습니다. 말러의 원곡을 연상시키지만 더욱 현대적이고, 슈니트케 특유의 기법이 눈에 띕니다.

이처럼 음악 역사에서 후배는 선배의 영향을 받고, 남겨진 아이디어를 확장시키거나 경의를 표하기 위한 작곡을 하기도 합니다. 대중음악의 리메이크와 샘플링처럼 클래식 음악에도 재창작 정신이 흐르거든요. ‘패러프레이즈(paraphrase)’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 등의 단어가 음악회 프로그램에 심심찮게 등장하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현대의 음악학자ㆍ작곡가들이 ‘완성’으로 바꿔놓기도 했고, 베토벤의 10번 교향곡도 80년대에 나왔습니다. 말러가 완성시키지 못한 마지막 교향곡 또한 ‘10번’으로 재탄생하기도 했죠. 리스트는 슈만의 가곡, 베토벤의 교향곡, 베르디의 오페라 등 수많은 곡을 피아노 작품으로 바꾼 ‘패러디의 왕’입니다. 라벨은 조국 프랑스 음악의 ‘할아버지’ 격인 쿠프랭을 위해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작품도 만들었고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완성시키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진혼곡 기억하시죠. 미국 작곡가 리처드 대니얼푸어(54)가 모차르트의 여덟 마디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제목은 ‘축복받은 자의 눈물’. 한국의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위촉했고 다음 달 29일 대관령에서 초연된다고 하네요. 남아공 월드컵이 각종 패러디 덕에 더욱 재미있듯, 클래식 음악의 여름도 짜릿할 전망입니다.

A 리메이크로 늘 새로워집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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