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지도자 크기가 나라 크기다’] 경력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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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전쟁이라고 불리는 월드컵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4년에 한 번씩 세계는 축구 때문에 열병을 앓습니다. 축구와 정치는 많이 닮았습니다. 정치도 4년에 한 번씩 대중을 열광시키는 선거를 치릅니다. 광적인 응원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도 비슷합니다.

축구와 선거가 이변이 많다고 하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수많은 정당과 국가가 도전하지만 집권에 성공한 정당과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는 몇 안 됩니다. 변방 세력의 도전을 용납지 않는 지배 세력의 힘은 생각보다 센 편입니다.

월드컵을 통해 전설적인 선수들이 자신의 시대를 실력으로 열었습니다.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우어, 지단, 호나우두 등이 국가에 우승컵을 안기는 대관식을 치르면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정치인도 선거를 통해 지도자로 떠오릅니다. 얼마 전 끝난 지방선거에서도 젊은 정치인들이 지도자의 문을 스스로 열었습니다. 지도자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닙니다. 문을 박차고 나가 싸워서 스스로 얻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7월 중순께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뽑는다고 합니다. 민주당도 8월 중 전당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전당대회는 당의 관리인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 청와대의 대리인을 뽑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뽑히는 대표는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도자가 못 되는 장수가 나서 봐야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관리형 대표’라는 말이 존재하는 당은 미래가 없습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2012년 대선의 경선을 관리할 사람들을 뽑는 게 아니라 출전할 선수를 뽑는 선발전입니다. 축구에서도 월드컵 우승을 위해 최고의 선수를 뽑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의외의 선수가 뽑히기도 하고 모두가 뽑히리라고 예상했던 선수가 탈락하기도 합니다. 최고의 팀은 ‘치열한 경쟁’과 ‘냉정한 평가’를 통해 ‘공정한 선발’을 합니다. 계파나 파벌에 얽힌 선발은 팀의 전력을 약화시킵니다. 지난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예상보다 부진한 성적을 냈던 쇼트트랙 선발이 그랬다고 하지요.

한나라당은 전당대회나 혹은 당내 경선만 나오면 계파부터 따집니다. 그런 정당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쓴소리를 했습니다. 당의 쇄신을 주장하는 의원들에 대해 “친이, 친박 앞잡이 노릇 하던 이들이 무슨 명분으로 쇄신운동을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는 또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은 것은 공천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의원이나 당협위원장들이 ‘줄 세우기’식 공천을 했다”고 했습니다. 공천이 아니라 사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쇄신의 대상’이지 쇄신의 주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나이만 젊다고 쇄신의 자격이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부끄러워 반성한다는 어느 국회의원은 ‘대정부 질문’ 시간에 깊은(?) 반성을 했지만 그건 더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 시간과 그 자리는 그런 데 쓰라고 주어진 게 아닙니다.

한나라당은 입만 열면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왜 경쟁을 그토록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걸핏하면 ‘추대’를 말하는 정당이 다른 사람들에겐 경쟁을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월드컵을 앞두고 나라마다 실전 같은 평가전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전력의 핵심 선수가 부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두려워 평가전을 치르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떨어진 대부분의 후보가 경선 없이 공천받은 사람들입니다. 전당대회에서 추대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국가와 당의 비전을 내걸고 당당히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당도 강해지고 정치인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40~50대 정치인들이 정부나 청와대 요직 하마평에 오르내립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총리나 장관, 혹은 대통령 비서실장 같은 자리가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아졌습니다. 그럴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했지만 그것 때문에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까지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도 총리나 장관을 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의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누가 되느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과 한나라당의 변화를 위한 ‘꿈’을 던지는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패기 있게 도전하는 젊은 정치인들의 출사를 기대해 봅니다.

정치 컨설팅 ‘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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