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전 보니 우리 희생 헛되지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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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벨라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협회 부회장이 참전용사 회관에 걸려있는 1층의 전시실에 걸려있는 6·25 작전 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희생이 한국의 자유와 눈부신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일마 벨라추(79)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 부회장의 말이다. 벨라추 부회장은 22일 오후(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아핀초베로 공원 안에 있는 ‘대한민국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회관’에서 기자를 만나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회관 밖에는 6·25전쟁 참전기념탑과 당시 전사한 122명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탑 옆에는 태극기와 에티오피아 국기가 나란히 휘날리고 있었다. 2층 규모의 회관은 5년 전 춘천시와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원회가 지어줬다.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군은 춘천에 주둔했다. 그래서 춘천시는 6년 전 아디스아바바시와 자매결연을 했다.

벨라추 부회장은 아프리카 북동부 아데만에서 소말리아 해적 퇴치와 한국 상선 호송 임무를 하고 있는 해군 청해부대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청해부대가 지난달 8일 지부티(아디스아바바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독립국가)의 항구에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20명을 초청해 보은행사를 열었을 때 받은 모자”라며 “60년 전 다른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자유를 지켰던 한국의 해군이 이제는 큰 군함을 타고 머나먼 아덴만까지 와서 해상 평화유지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한국에 세 번 갔다 왔는데 불탄 집과 잿더미만 있던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며 “한국 사람들이 아주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1951년 4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모두 6037명의 왕실 근위대를 한국에 보냈다. 벨라추는 “왕실 근위대는 매우 유능한 엘리트 군인이었다”며 “이들은 춘천과 가평 등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그는 “나도 19살 때 중위로 참전했다”며 “52년 지부티에서 출발해 20여 일간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뒤 춘천 근처에서 미군 부대에 배속돼 1년2개월 동안 북한군·중국군과 치열하게 싸웠다”고 말했다.

회관 1층의 전시실에는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입었던 군복, 전투지역 지도, 전사자 사진 등이 진열돼 있었다. 전사자를 에티오피아로 나를 때 사용했던 관도 4개 보관돼 있었다. 과거 한국신문이 보도한 에티오피아 관련 기사도 전시돼 있었다.

그는 에티오피아 군대의 당시 전투지역 지도를 소개하면서 “에티오피아 군인은 포로가 한 명도 없는 용감한 부대였다”고 자랑했다. 에티오피아군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56년까지 남아 전쟁을 마무리하는 데 일조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했던 가사(82)는 “53년 한국전쟁이 끝나기 직전부터 1년4개월 동안 한국에서 중대장으로 있으면서 휴전선을 지켰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은 74년 쿠데타로 왕권이 무너지고, 공산 맹기스투 정권이 들어선 뒤 탄압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벨라추는 “91년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탄압은 사라졌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힘을 뭉치자는 취지에서 19년 전 다른 사람들과 협회를 만들어 현재 회원이 500명 정도”라며 “한국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후손들에게 우리가 했던 일을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디스아바바 =오대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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